대기발령 내고 "화장실 가는 것까지 적어라"…법원 "사측 위법"
리서치 담당자로 입사→무단 전보→부당해고→복직 후 대기발령
자리 뜰 때마다 행선지·시간 적게 해…위자료 지급 판결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대기발령 상태의 직원에게 화장실 사용을 포함해 자리를 뜰 때마다 행선지와 사유를 장부에 적게 한 회사가 해당 직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사측의 이 같은 지시가 합리적인 수준의 근태 관리를 넘어서 개인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 불법 행위라고 지적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오상용 부장판사)는 A(여)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 소송에서 회사가 A씨에게 2천5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또 A씨 동의 없이 근로계약서 상 업무와 상관없는 부서에 발령낸 것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2015년 6월 '리서치 연구 및 조사 업무'에 한정해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고 연구팀의 팀장으로 입사했다.
회사는 그해 11∼12월 A씨의 성과 등을 문제 삼았고, 이듬해 1월에는 해당 연구팀을 해체했다. A씨에겐 다른 부서의 일을 보조하는 전문위원 직함을 줬다.
회사는 이후 A씨에게 1개월 대기발령을 명했다. A씨가 쓰던 노트북도 회수해 이메일 계정을 복구한 뒤 그가 고객사에 보낸 이메일을 문제 삼으며 해고했다.
A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4개월 반 만인 7월 복직했다.
회사는 복직한 A씨를 경영지원부로 발령냈다. 리서치 업무와 무관한 부서였다.A씨는 그해 12월 말 다시 대기발령이 났다. 회사 계정으로 받은 이메일을 개인 메일 계정으로 무단 발송해 보안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회사는 A씨를 대기발령 내면서 그에게 자리를 뜰 때마다 행선지와 사유, 시간 등을 장부에 기재하라고 했다. 이 장부는 다른 직원들도 볼 수 있는 공개된 장소에 비치됐다. A씨가 하루에 몇 번 화장실을 가는지까지 공개된 셈이다.
A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끝에 석 달 뒤 장부 작성을 중지하라는 조정 결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A씨의 고충은 끊이지 않았다. 대기발령이 길어지자 회사 홈페이지의 익명 게시판엔 그를 두고 '무전취식'·'급식충'이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이 글들은 회사의 방치 속에 9개월 넘게 게시판에 올라 있었다.
법원은 사측의 이 같은 행태가 위법·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회사가 A씨를 경영지원부로 발령낸 것은 "근로자 동의 없이 근로계약의 본질적인 내용을 변경한 것"이라며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자리를 뜰 때마다 행선지 등을 적게 한 것도 "합리적인 수준의 근태 관리 방법을 넘어서 근로자인 원고의 행복추구권과 행동자유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불법 행위"라고 꼬집었다.
익명 게시판 글을 방치한 것 역시 회사가 게시판 운영자로서 명예훼손 글을 삭제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며 A씨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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