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수포 직접 펼친 린드블럼, 간절함으로 10승 고지 점령
"어릴 때부터 구장 관리 도와주다 보니 나도 모르게 뛰어나가"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타자들이 1회부터 안타를 펑펑 쳐주며 점수를 뽑아줬다. 컨디션도 좋았다. 원하는 대로 공이 들어갔다.
3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에서 기분 좋게 타자를 돌려세우던 두산 베어스 우완 투수 조시 린드블럼(31)은 갑자기 떨어진 빗방울에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작았던 빗방울은 이내 곧 굵은 빗줄기로 바뀌었다. 두산이 9-0으로 앞선 4회초, 심판진은 우천중단을 선언했다.
마운드에서 곧바로 발걸음을 떼지 못한 린드블럼은 아쉬운 마음을 담아 손에 쥐고 있던 야구공을 백네트까지 휙 던진 뒤 더그아웃으로 내려갔다.
곧 그라운드에 방수포가 등장했다. 린드블럼은 구장 관리요원보다 먼저 그라운드로 뛰어나가 홈플레이트 쪽 방수포를 직접 펼치기 시작했다.
눈앞에 승리가 다가온 걸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린드블럼의 바람대로 빗줄기는 점점 약해졌다. 오후 6시 15분 중단한 경기는 7시 19분 재개됐다.
다시 마운드에 올라간 린드블럼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비가 오기 전과 다를 것 없는 강한 공을 던졌다.
12-0으로 앞선 6회까지 마운드를 책임진 린드블럼의 투구 성적은 6이닝 3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으로 흠잡을 데 없었다.
투구 수는 76개였고, 직구 최고 시속은 149㎞까지 나왔다.
결국, 두산은 12-2로 승리했고, 린드블럼은 시즌 10승(2패) 고지를 밟았다.
경기 후 린드블럼은 방수포를 펼쳤던 게 자신도 민망했던지 "어릴 적부터 구장 관리를 도와주다 보니 습관적으로 나도 모르게 뛰쳐나간 것 같다"며 웃었다.
많은 투수는 비로 경기가 중단되면 좋은 흐름을 잃는다.
린드블럼은 "가장 중요한 건 멘털"이라며 "경기를 계속할 거로 생각하고 몸을 풀었다. 재개 후에는 1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이었다"고 설명했다.
올해 두산 유니폼을 입은 린드블럼은 경기 때마다 "우리 동료들이 최고"라고 말한다.
이날 두산 야수진은 든든한 득점 지원에 호수비까지 곁들였다.
린드블럼은 "오늘 팀원 모두 공격과 수비를 잘해줘 투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면서 "박세혁의 리드대로 공격적으로 던진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2015년 13승, 2016년 10승을 거뒀던 린드블럼은 전반기가 끝나기 전에 벌써 10승을 채웠다.
그는 "개인 성적보다 팀 우승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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