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투표함에 불 질렀나…재개표 앞둔 이라크 혼돈(종합)
이라크 정부 "명백한 방화"…재투표 요구 비등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부정 선거 시비로 재개표가 결정된 이라크 총선 투표함 등이 보관된 창고에 10일(현지시간) 오후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났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그렇지 않아도 총선이 부정 시비로 물든 판에 투표함 화재가 겹치면서 차기 의회와 내각을 구성하는 데 차질이 빚어진 이라크 정국은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됐다.
이날 불로 수도 바그다드의 투표함 보관소의 창고 4곳 중 1곳이 탔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진화 작업을 하는 동시에 화재를 피해 나머지 창고 3곳에 보관된 투표함을 안전한 곳으로 신속히 옮겼다.
카셈 알아라지 이라크 내무장관은 11일 "의심할 여지 없이 방화"단언하면서 "이 사건을 경찰이 조사중이다"라고 말했다.
이 화재로 총선 관련 서류와 장비, 투표용지가 얼마나 소실됐는지는 아직 조사되지 않았다.
이라크 내무부 사드 만 대변인은 10일 밤 "불이 난 창고에 기표된 투표용지가 보관됐을 수 있다"면서 "투표함 대부분은 불이 안 난 창고 3곳에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라크에선 지난달 12일 총선이 치러졌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처음 도입된 전자 투개표 시스템이 해킹과 조작에 취약하다는 논란이 벌어졌다. 또 이라크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런 허점을 알고서도 전자 투개표 시스템을 이용한 선거를 강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이라크 의회는 이달 6일 재외국민 투표와 난민촌에서 진행된 거소 투표의 효력을 무효로 하고 전국 투표함을 손으로 재개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공교롭게 화재 당일 이라크 최고연방법원은 재개표를 관장할 위원 9명을 선임했다.
이날 화재가 방화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재개표를 앞두고 투표함이 소실됐을 가능성이 큰 만큼 재개표의 신뢰성도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화재의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부정선거 시비로 재개표를 앞둔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점에 발생한 터라 각 정파간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아예 전면 재투표를 해야 한다고 요구도 커지는 분위기다.
살림 알주부리 이라크 의회 의장은 "투표함 보관창고 화재는 부정 선거, 개표 결과 조작을 은폐하려는 세력의 의도적인 범죄 행위"라면서 재투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총선에선 예상을 뒤엎고 강경 시아파 성직자이자 반외세 민족주의자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이끄는 알사이룬 정파가 최다인 54석(총 329석)을 차지했다.
알사드르는 11일 낸 성명에서 "단지 한 두 석을 더 얻으려고 투표함을 불태우고 선거를 다시 치르는 대신 이라크를 재건하기 위해 하나로 뭉쳐야 할 시기 아니냐"라면서 단합을 호소했다.
총선에서 승리한 알사드르 측은 자신들의 약진에 승복하지 못하는 주류 정치권의 소행으로 의심하고 있다.
알사드르의 측근 디아 알아사디는 "오늘 화재는 부정을 숨기고 재투표를 노리는 자들의 음모"라면서 "화재의 배후는 총선 자체를 무효로 하거나 개표 결과를 없애려고 했다"고 비판했다.
hsk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