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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불교 전통, 단절 아닌 연속으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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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불교 전통, 단절 아닌 연속으로 봐야"
김용태 교수 '역사비평'서 주장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숭유억불'(崇儒抑佛)은 사상사 측면에서 조선 사회를 설명할 때 흔히 사용하는 용어다. 불교를 중시한 고려를 폐한 조선이 불교를 억누르고 유교를 숭상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성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는 것처럼 단번에 사상 교체가 이뤄졌을까. 고려 후기 불교가 쇠퇴한 이유를 역성혁명에서만 찾아야 할까.
고려와 조선 관계를 '연속성'이라는 관점으로 조명하는 기획을 지난해 가을호부터 진행 중인 계간 '역사비평'은 최신호에서 여말선초(麗末鮮初) 불교 변화상을 살핀 논고를 실었다.
김용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는 '조선 500년'을 유교사회로 도식화하는 견해를 부정하면서 사상의 무게중심이 불교에서 유교로 이동하는 과정이 급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우선 숭유억불이라는 개념이 조선시대에 존재하지 않았고, 20세기 이후 일본 학자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는 "조선 문헌 사료에서 유학을 높이고 도를 중요시한다는 '숭유중도'(崇儒重道)는 쉽게 볼 수 있지만, 유교와 불교를 극명히 대비시킨 정치·이념적 선전 문구인 숭유억불은 나오지 않는다"며 "숭유억불은 당대가 아닌 후대 인식이 반영돼 탄생한 일종의 조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불교에서 유교로의 교체, 이른바 유불교체 조짐이 조선 건국 이전부터 싹을 틔웠다고 분석했다. 고려가 성리학을 수용하고 1340년대에 주자의 사서집주가 고려 과거시험 교재로 채택되면서 유교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패러다임 전환기였던 14∼15세기에 정치이념과 시대사조는 분명히 불교에서 유교로 전환했지만, 종교와 관습 영역에서 불교가 가진 지속성은 유지됐다고 역설했다.
예컨대 성현(1439∼1504)이 쓴 '용재총화'를 보면 "4월 8일 연등회와 7월 보름 우란분(盂蘭盆·고통을 구해주는 법회), 12월 8일 욕불(浴佛·불상에 물을 붓는 의식) 때는 다투어 다과와 떡 같은 것을 시주해 부처에게 공양한다"는 기록이 있어 불교 의례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조선 초기의 공식 기록으로는 억불 공론화가 주된 흐름처럼 보이지만, 사상과 신앙을 두 축으로 하는 불교 전통의 내적 지속 또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특징이었다"며 "왕조 교체를 단절의 기점으로 획정하기보다는 변동과 연속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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