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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경제 주도 우먼파워 "사업가 상당수"
프랑스인 한반도 전문가들 신간 '100가지 질문으로 본 북한'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북한이 고립무원의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는 듯 보이지만, 내부적으로 이미 시장경제가 상당히 퍼지고 있다는 것은 더는 비밀이 아니다.
2003년 문을 연 평양 통일거리시장을 비롯해 북한 전역의 시장은 최근 인공위성에 포착된 것만 480여 개에 달하며, 길거리 시장인 장마당까지 합치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국의 눈을 피해 생필품을 밀거래하던 지하경제에서 출발한 북한 시장경제는, 2000년대 초반 북한 정부의 경제개혁 조치로 양성화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정부의 계획과 재정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북한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없어서는 안 될 버팀목 역할을 한다.
프랑스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쓴 '100가지 질문으로 본 북한'(세종서적 펴냄)은 이러한 북한 시장경제의 탄생 배경과 경과를 소개한다.



저자는 프랑스의 한반도 문제 전문 한국학자인 쥘리에트 모리요와 프랑스 일간지 '라 크루아' 아시아담당 부장인 도리앙 말로비크. 2016년 프랑스어판이 출간됐으며 이번에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책은 한반도 역사에서부터 정치, 경제, 지정학, 사회, 문화, 그리고 핵위기 등 현안에 이르기까지 북한에 관한 질문 100가지를 던지고 간명하게 답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부담 없이 읽히면서도 기존 상투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북한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폭넓은 통찰을 제공한다.
책은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북한의 경제개혁 조치가 정부의 자발적인 개혁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한다.
1991년 사회주의 진영의 맏형 소련이 붕괴하면서 소련의 지원에 의존한 북한의 산업형 농업 중심 경제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1995년 대홍수와 1996~1997년 가뭄으로 참혹한 기근이 겹치면서 북한은 역사상 최초로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할 만큼 심각한 경제난에 빠졌다.
'고난의 행군'으로 불린 대기근 기간 사망자는 150만~200만 명에 달하고, 인구 4분의 1가량인 5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 시장경제가 출현한 건 이때부터다. 주민들은 국가 배급품이 끊기자 조그만 땅뙈기를 직접 경작해 수확한 농산물로 생계를 잇고 남은 것을 시장에 팔기 시작했으며,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 하게 된 정부는 이를 용인했다.
그러면서 하나둘 노점들이 생겨나고 중국 등지에서 들여온 밀수품이 거래되면서 시장으로 발전했다. 여기서 돈을 모은 일부 주민은 소매상, 유통, 경공업, 건축, 부동산으로 진출하고 외화 환전과 단기대출 같은 소규모 금융업까지 하게 됐다. 이들은 '돈주'(돈의 주인)로 불린다.
북한에서 이러한 시장경제를 추동해낸 건 여성이었다. 대기근 시기 남성들은 공장과 농장의 생산이 중단되고 월급을 받지 못하면서도 매일 직장에 출근해야 했다. 때문에 가족 생계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여성들이 책임져야 했다.
땅뙈기를 일구고 소유한 것을 팔아 식량을 산 것은 여성이었으며, 중국 국경을 넘어 구한 물건을 장마당에서 팔고 돈을 빌려 작은 식당과 공장을 연 것도 여성이었다.
책에 따르면 북한의 신흥 사업가인 돈주 상당수가 여성이고, 여성이 북한 경제(시장경제) 인구의 70~80%를 차지한다.
저자들은 북한의 여성들이 "비공식 경제의 초석"을 닦고, 오늘날 성공해 "신흥 충산의 활동핵"을 형성한다고 평가한다.



2012년 출범한 김정은 정권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모델로 삼아 경제개혁을 강화했으며, 덕분에 북한 시장경제는 더욱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북한은 2014년 돈주 등 개인의 기업투자를 합법화했으며, 시장에서 거둬들이는 적지 않은 세금으로 재정을 충당한다.
책에는 북한 국내총생산(GDP)의 25~50%를 민간 부문이 담당한다는 통계조사도 소개된다.
한때 심각한 퇴행을 겪던 북한경제는 최근 안정을 찾는 모습이다. 미국 주도 국제적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2016년 17년 만에 가장 높은 3.9%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이제 돈주의 신전인 평양의 신구역은 번쩍거리는 주택과 대리석·유리로 덮인 쇼핑몰이 늘어서 있고, 상해나 싱가포르의 대로변 같은 호사스러움을 자랑하고 있다. 유복한 젊은이들은 그곳에서 옷과 음악을 이야기하고, 스포츠센터에 들르기 전에 카푸치노를 마실지 에스프레소를 마실지 고민한다."(276쪽)
책은 이 밖에도 북한 주민들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얼마나 이용하는지, 젊은이들은 어떻게 연애를 하는지, 교육과 의료 체계는 어떠한지, 오늘날 북한 사회의 다양한 모습과 주민들의 일상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최대 현안인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선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라틴어 속담으로 답한다. 북한의 핵무기는 공격용이 아닌 억제용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로 북한은 선제공격할 경우 미군에 정권이 무너지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는 점을 든다. 북한이 자살을 원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거듭된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을 통한 도발은, 외적으로 미국의 관심을 끌어 대화 테이블에 앉도록 만들고, 내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을 결속시킴으로써 정권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한다.
책 출간 시점이 한반도 정세가 불투명하던 2016년인 점과 '비핵화-체제안전보장' 빅딜을 논할 북미회담이 임박한 점을 고려하면 저자들의 통찰이 빛난다.
조동신 옮김. 336쪽. 1만7천원.



abullapi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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