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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산 마애불서 조상기 추정 신라 명문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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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산 마애불서 조상기 추정 신라 명문 발견
박홍국 교수, 8자 판독…"석불 명문 중 국내 최고"
"6∼7세기 품격 있는 서체, 여성이 불사 주도 가능성"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경주 시가지가 한눈에 보이는 월성 서쪽 선도산 정상의 신라 마애불은 누가 만들었을까. 비록 얼굴과 몸이 상당 부분 떨어져 나갔으나, 여전히 웅장하고 아름다운 불상에는 어떤 사연이 깃들었을까.
선도산 마애불은 높이 6.85m인 아미타여래입상이 좌우에 높이 4.6m 안팎의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을 거느린 형태다. 부서지기 쉬운 안산암에 본존인 아미타여래를 먼저 조각하고, 나중에 화강암 재질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학자가 이 불상 주변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신라인이 새긴 글씨가 드디어 확인됐다. 불상에 얽힌 사실뿐만 아니라 신라 사회상을 유추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불교고고학 전공인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은 '선도산 마애불'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경주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보물 제62호) 옆 성모사(聖母祠) 뒤편 바위에서 불상 조성과정을 담은 7세기 전후 조상기(造像記)로 판단되는 글자를 최근 발견했다고 4일 밝혔다.
박 관장은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성모사 뒤쪽 바위에 희미한 글씨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며 "먼지를 닦아내고 탑본을 뜨니 몇몇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고 말했다.
명문은 마애불을 전면에 두고 바라봤을 때 오른쪽 사당인 성모사 건물 뒤 바위에 있다. 이 바위는 오래전 밀려 내려온 것으로 추정되며, 바위와 건물 사이는 성인 한 명만 드나들 정도로 좁다.
박 관장이 판독한 글자는 가로 5행, 세로 5열 중 8자다.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1∼5열로 번호를 붙이면, 1열 1행에 운(云)으로 보이는 글자가 있다. 2열 1행은 거(居), 5행은 미(彌)를 새겼고, 3열과 4열 5행에 각각 문(聞)과 사(思)가 있다.
가장 글자가 많이 남은 열은 5열이다. 5열 3∼5행에는 차례로 아(阿), 니(尼에서 匕 대신 工), 신(信)이 보인다.
글자 크기는 세로 3.5∼4.5㎝이며, 상하 글자 간격은 2∼3㎝다. 열간 간격은 약 4㎝다. 바위는 많이 훼손됐으며, 글자가 있는 부분 중간에 대각선 방향으로 후대에 배수를 위해 판 것으로 짐작되는 길이 110㎝, 너비 6㎝, 깊이 3㎝인 홈이 있다.
박 관장은 "이번에 판독한 글자는 전체 글의 중간 부분으로 보이며, 연호나 간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며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 조상 명문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 석불 명문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박 관장과 함께 선도산 마애불 명문을 살펴본 이영호 경북대 교수는 "비록 일부 글자만 판독했으나, 마애삼존불 조상기일 가능성이 큰 매우 중요한 금석문"이라고 평가했다.
신라 서예사를 연구한 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명문 글씨는 힘차면서 품격 있는 북위풍 해서(楷書·정자체)"라며 "경주 남산신성비 제10비(591), 함안 성산산성 출토 임자년 목간(592), 하남 이성산성 출토 무진년 목간(608) 글자와 서풍이 흡사한 6세기 말∼7세기 초 신라 글씨"라고 말했다.
선도산 마애불 명문은 서체뿐만 아니라 의미 측면에서도 가치가 큰 자료로 평가된다. 박 관장은 "미(彌) 자는 마애삼존불 본존불이 아미타여래인 것과 관련이 있고, 사(思)나 신(信) 자는 불교 신앙과 연관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는 특히 '아니'(阿니<尼에서 匕 대신 工>)를 눈여겨보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박 관장은 "578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 무술명 오작비(塢作碑)에 있는 아니(阿尼)의 다른 형태 글자 같다"고 강조했다.



하일식 연세대 교수는 "삼국사기에 '아니'(阿尼)가 두 번 나온다"며 "551년 '국통(國統) 밑의 도유나랑(都維那娘)은 아니로서 1명'이라는 기록이 있고, 통일기에 '국왕 직속 궁정관부 아니전(阿尼典)에는 모(母) 6인'이라는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명문을 직접 보지 않았음을 전제로 "선도산 명문이 '아니'가 맞는다면 여성 승려를 뜻하는 호칭일 것"이라며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직후부터 여성의 출가가 이뤄졌고, 그들이 불사를 주도하거나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박 관장은 진평왕(재위 579∼632) 때 선도산 신모(神母)가 지혜(智惠)라는 비구니의 꿈에 나타나 불사를 도왔다는 삼국유사 속 이야기를 소개한 뒤 "이번에 발견한 명문은 서체나 내용 면에서 마애불 조성에 대단한 공력이 투입됐음을 입증하는 자료"라고 주장했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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