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발레 명가의 품격…백조 군무 압권
볼쇼이 오케스트라-발레단 '백조의 호수' 내한 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신비로운 푸른 불빛 아래 순백색 튀튀(발레 치마)를 입은 30여명의 발레리나가 한 몸처럼 날갯짓을 시작했다. 등을 둥글게 만 발레리나들이 하얗고 긴 팔은 내뻗자 날개가 됐고 벌어진 손가락은 깃털이 됐다.
지난 2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 볼쇼이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은 240년 역사를 자랑하는 발레 명가의 품격과 위엄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평일 저녁 공연임에도 2천석에 달하는 오페라극장을 4층까지 가득 메운 관객은 순백 판타지에 감탄하고 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볼쇼이 발레단은 마린스키 발레단과 함께 러시아 발레 제국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마린스키 발레단은 우아함, 볼쇼이 발레단은 힘과 역동성이 상대적 강점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이번 무대에서 볼쇼이 발레단은 테크닉뿐 아니라 우아함과 그림 같은 군무로 러시아 발레의 장점을 고루 펼쳐냈다.
백조들의 우아한 날갯짓부터 32회전 푸에테(연속 회전) 등과 같은 고난도 기술, 왕궁 무도회에서 펼쳐지는 춤의 성찬, 차이콥스키의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 등은 왜 이 작품이 고전발레의 대명사로 불리는지 새삼 깨닫게 했다.
수석 무용수들은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우아함 그 자체였다.
백조 '오데트'와 흑조 '오딜' 1인 2역 역을 연기한 수석 무용수 율리아 스테파노바는 한 마리 백조의 환생이었다. 쏙 들어간 무릎에 길고 곧은 다리, 섬세한 팔근육, 깔끔한 테크닉은 객석을 홀렸다.
워낙 매끄럽고 부드러운 움직임 때문에 강렬한 카리스마와 마력을 뿜어내야 하는 흑조 연기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때문에 공연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백조가 흑조로 변하는 반전의 묘미가 부족했다.
'지크프리트' 왕자 역의 아르템 아브차렌코는 안정된 기량과 연기, 섬세한 몸선으로 무대에 품격을 더했다.
발레단마다 다른 결말을 비교하는 것도 '백조의 호수'를 관람 포인트 중 하나로 꼽히는데, 볼쇼이 발레단은 슬픈 결말을 택했다. 1964년부터 1995년까지 32년간 볼쇼이 발레단을 이끈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악마 '로트바르트' 손에 백조가 죽고 왕자만 홀로 남겨지는 결말을 택함으로써 비극성을 강조했다.
이번 내한 공연은 볼쇼이 오케스트라와의 합동 내한으로 더 관심을 모았는데,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발레단-오케스트라의 '찰떡궁합'은 춤에 윤기를 더했다.
장일범 음악평론가는 "볼쇼이 발레단이 한때 침체기를 겪으며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역시 발레 명가는 명가"라며 "군무부터 수석들까지 모두 우아함의 극치였으며 오케스트라의 생생한 리듬감도 일품이었다"고 평했다.
공연은 29일에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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