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있으라'…런던 그렌펠타워 화재때 세월호 판박이 지시
희생자들, 적극적인 대피 대신 집안에 머무르다 참사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영국판 세월호'로 불리는 런던 그렌펠타워 화재 사고 현장에서 소방당국이 전략적 판단을 잘못하는 바람에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014년 세월호 사고 당시 선실에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듯, 런던 소방당국이 집안에 머물도록 지시하면서 희생자들이 탈출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25일(현지시간) 영국 보수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이번주 희생자를 기리는 행사를 시작으로 그렌펠타워 화재사건의 구체적인 원인과 대응절차 등에 대한 공식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사고 생존자들과 희생자 가족들은 사고 당시 런던 소방당국이 건물 입주자들에게 '그대로 있으라(stay put)'고 안내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희생을 불러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런던은 물론 영국 소방당국은 통상 그렌펠타워와 같은 고층건물에서 화재사고가 날 경우 '그대로 있으라'는 지침을 기본으로 택한다.
특히 화재지점이 격리돼 크게 번질 가능성이 없는 경우 대부분 이같은 지침 하에 진화와 구조활동에 나선다.
문제는 그렌펠타워의 경우 가연성 외벽 마감재(클래딩) 등으로 불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졌다는 점이다.
이 경우에는 주거지 내에 그대로 머무르게 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대피를 지시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텔레그래프는 런던소방당국이 지난해 6월 14일 오전 12시 54분 첫 번째 긴급 신고가 들어온 지 두 시간여가 지난 오전 2시47분에서야 적극적인 대피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변경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꼭대기층에서 아들과 함께 겨우 대피에 성공했지만 남편을 잃은 플로라 네다(53)는 "소방관들이 처음부터 대피를 시켰다면 모든 이들이 목숨을 건졌을 것"이라며 "소방관들은 당시 화재가 거대하고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 알아서 대피하라고 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있을 것이다"고 비판했다.
소방노조의 한 간부는 "소방관들이 현장에 도착한 지 10분도 안 돼 그렌펠타워안에 머무르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면서 "그러나 질식사할 위험이 있는 단 하나의 좁은 계단으로 대피하는 것 보다는 집안에 머무르면서 구조를 기다리게 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다음달 있을 증거 심리 과정에서 소방당국의 대응전략이 적절했는지에 관한 철저한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앞서 지난해 6월 24층짜리 런던 공공 임대아파트 그렌펠타워에서 화재가 발생해 모두 71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밤중에 발생한 화재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사용한 가연성 외장재가 불쏘시개로 작용하면서 참사로 이어졌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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