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酒)류문학 대가' 권여선의 안주 산문집
첫 산문집 '오늘 뭐 먹지?'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로 '주(酒)류문학의 대가'라는 애칭을 얻은 작가 권여선(53)이 첫 산문집으로 음식, 특히 안주에 관한 각별한 사랑을 담은 책을 내놨다.
'오늘 뭐 먹지?'(한겨레출판)는 작가가 봄, 여름, 가을, 겨울, 환절기까지 다섯 부분으로 나눠 각 계절마다 어울리는 안주 총 20가지에 관한 식도락을 쓴 책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제목인 '오늘 뭐 먹지?'는 '오늘 안주 뭐 먹지?'에서 안주란 말을 생략한 것이다.
"고작 두 글자 첨가했을 뿐인데 문장에 생기가 돌고 윤기가 흐르고 훅 치고 들어오는 힘이 느껴지지 않는가. 지인들은 벌써 내가 소설에서 못 푼 한을 산문에서 주야장천 풀어내겠구나 걱정들이 태산이지만 마음껏 걱정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무엇을 걱정하든 그 이상을 쓰는 게 내 목표다. 아, 다음 안주는 뭐 쓰지?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책머리에 '들어가는 말- 술꾼들의 모국어'라는 제목으로 쓴 이 글만 봐도 이 책을 쓰는 작가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안주를 탐닉하는 그의 먹성이 타고난 것은 아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약골이었고 편식도 심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육류라고는 고슬고슬 구운 소불고기와 전기구기 통닭의 퍽퍽한 가슴살, 두 가지밖에 먹지 않았다는 것. 대학에 들어가서도 주점에서 돼지비계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보고 기겁을 하고, 깍두기만 먹으며 독한 소주를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근처 순대촌에서 소금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다 만취해 잠든 거 같은데, 다음날 친구는 그가 "순대를 마구 집어삼켰다"고 증언한다.
"친구의 증언에 의하면, 나는 벗들의 권유로 처음엔 오만상을 찡그리며 순대 하나를 먹었지만 오물오물 씹고 나더니 의외로 맛이 괜찮다며 또 하나를 먹었고, 급기야 나중에는 너무 맛있다며 순대를 마구 집어삼켰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친구의 증언 외에 내 속에서 나온 강력한 물증까지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순대를 잘 먹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소 역겨운 안주가 나와도 '에잇! 나는 순대도 먹은 년인데 이 정도야!'하는 정신력으로 눈 딱 감고 먹게 되었다. (중략) 그렇게 일취월장, 내 입맛은 소주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났다." (21쪽)
그렇게 입맛의 한계를 무한히 확장시켰음에도 그는 안주를 즐기는 삶에서 아직도 불편한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내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혼자 순댓국에 소주 한 병을 시켜 먹는 나이 든 여자를 향해 쏟아지는 다종 다기한 시선들이다. 내가 혼자 와인 바에서 샐러드에 와인을 마신다면 받지 않아도 좋을 그 시선들은 주로 순댓국집 단골인 늙은 남자들의 것이다. 때로는 호기심에서, 때로는 괘씸함에서 그들은 나를 흘끔거린다. 자기들은 해도 되지만 여자들이 하면 뭔가 수상쩍다는 그 불평등의 시선은 어쩌면 '여자들이 이 맛과 이 재미를 알면 큰일인데' 하는 귀여운 두려움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두려움에 떠는 그들에게 메롱이라도 한 기분이다."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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