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美, 만나자는 北 담화 계기로 방향 선회해야
(서울=연합뉴스) 평화로 가는 길은 평탄하지 않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향하는 도정도 마찬가지다. 아슬아슬한 도발적 언행을 주고받은 끝에 폭발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회담 취소 발표는 이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전쟁과 냉전을 거친 60여 년 세월 적대와 불신이 켜켜이 쌓인 한반도의 대결 구도를 평화 구도로 바꾸는데 신뢰 기반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기게 한다. 그나마 북미가 판을 완전히 깨지 않고 만남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다. 정상 차원을 포함한 다양한 채널의 접촉으로 하루빨리 대화 흐름을 복원해야 한다. 공존 공영하는 질서를 한반도에 구축하는 역사적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에 절제된 첫 반응을 나타낸 것은 평가해야 한다. 백악관 발표 후 9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입장을 내놓은 건 신속한 위기관리로 대화 불씨를 꺼트리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며 '무조건 대화'를 촉구했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 형식이지만 "위임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우회적으로 진화에 직접 나선 것은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반영한다. 자세를 굽혔다고도 할 수 있는 수준의 담화를 내놓은 것도 그만큼 '비핵화·평화 정상회담'에 대한 절실함을 드러낸 것으로 읽어야 한다.
공은 다시 트럼프에게 넘어갔다. 싱가포르 회담 취소 이유로 제시한 "최근 북한 발언에서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에 대해 북한이 공손한 태도로 해명한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비난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 담화를 직접 지목하고 "일방적인 핵 폐기를 압박해온 미국 측의 지나친 언행이 불러온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고 격하시켜 설명한 것은, 최선희 발언을 비중 있게 담아두지 말라는 당부이다. 북한도 과거 스타일의 '벼랑 끝 전술'이 원하는 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교훈으로 얻어야 한다. 트럼프도 이번 조치가 회담 테이블을 걷어차기보다는 실패한 협상으로 가지 않으려는 '일보 후퇴' 작전이라면 북한의 해명성 담화를 고리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리한 방향으로 판을 다시 짜기 위해 회담 취소라는 초강수를 둔 게 협상 전술이라고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타이밍과 방식은 트럼프 외교에 상처를 남길 것 같다. 북한 비핵화 이행의 첫걸음인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단행된 당일, 또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성공적 개최를 협의한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당일, 사전 통보도 없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한 것은 국제무대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동맹 정신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유감스럽다.
불신을 해소하지 못한 채 열리는 회담보다 차라리 사전에 불만을 다 쏟아 내놓고 진정성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뒤 회담을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실무 협상이 재개돼야 한다. 회담 취소를 발표하기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처음 언급했고, 김계관 담화도 '트럼프 방식'이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기대했다고 밝힌 데 비춰보면 비핵화 방식의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정상회담 국면이 파국으로 귀결되면 모두가 역사의 패자로 기록될 것이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부여잡고 평화로 가는 길은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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