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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통섭교수' 최재천
"동물이 사람보다 나은 면이 참 많죠"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최재천(65)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초대 국립생태원장을 지낸 생물학자다. 민벌레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개미, 원숭이, 돌고래 등을 연구해 왔다. 하지만 그에게는 생물학자, 생태학자, 사회생물학자, 동물행동학자, 통섭교수 등 다양한 호칭이 뒤따른다. 생물학을 기반으로 한 관심사가 인간, 삶, 사회, 지구촌으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환경운동을 해 온 최 교수는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가장 우려한다. 이대로 가면 자칫 이번 세기 안에 인류가 멸종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을 희망도 결국 인간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자연도, 사람도, 적도 우리가 "알아야 사랑할 수 있다"는 최 교수는 알기 위해 더 많이 연구하고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 2016년 말 국립생태원장을 그만둔 이후 어떻게 지냅니까.
▲ 생태원에서 너무 혼신의 힘을 다해 좀 쉬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 돌아오니까 연구실이 망가져 있었죠. 생태원장으로 있는 동안 연구비가 나오지 않은 탓이죠. 우리나라는 이상하게도 교수 자리에 있지 않으면 연구비를 지원해 주지 않아요. 지금 연구실 복원하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바쁩니다. 또 정부나 국제 NGO의 일을 맡고 있습니다. 몇 해 전 누군가 '위원장 동지'라는 별명을 붙여줬는데 어디 위원회에 불려가면 자꾸 위원장으로 호선돼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봐요. 최근 기획재정부의 한 위원회를 맡게 됐어요. 유엔기후변화협약 기후변화 적응 분야 명예대사도 맡았죠. 생물다양성협약 의장을 2년간 하고 국립생태원장도 해서 요청이 온 것 같습니다. 명예대사는 일종의 홍보대사죠. 필리핀 여성 정치인, 생물다양성 보존활동을 하는 이집트 기업가, 남태평양 통가의 여성 운동가와 함께 위촉됐어요.

-- 기후변화협약 명예대사로는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 기후변화의 중요성을 널리 알려달라는 거죠. 지난 4월 이집트에 가서 특강을 했어요. 어쩌다 보니 기후변화협약과 생물다양성협약에 모두 관계하는 사람이 됐는데 이상한 게 생물다양성협약 쪽에서는 기후변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하는데 기후변화협약 쪽에서는 생물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강의에서 기후변화도 중요하지만 기후변화로 생물다양성이 고갈되는 게 진짜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죠. 호응이 좋았어요. 강연이 끝나고 사인해 달라, 사진을 같이 찍자며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였죠. 너무 감동했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기후변화협약에서 강연해달라는 주문이 자꾸 들어옵니다.

-- 동물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 어릴 적 강릉에서 클 때 초가집 볏짚 속에 있던 생쥐를 잡아 온종일 주무르고 놀고, 소 묶어놓은 데에서 쇠똥구리를 잡아가며 놀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동물들에게 참 미안하죠. 밥 먹을 때도 쥐고 있을 정도로 종일 놔주지 않았거든요. 좋아서 그랬는데 얼마나 고생스러웠겠느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그냥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 좋았죠.

-- 학자의 길을 가게 된 경위가 궁금합니다
▲ 실험실에서 하는 연구는 정말 재미가 없죠. 그렇게 재미없는 것을 뭐 하려 하느냐는 의문이 들었죠. 놀고먹고 싶은데 취직하면 휴가 때나 조금 놀 텐데 인생이 재미가 없겠더라고요. 그러다가 대학 4학년 때 드디어 놀고먹는 사람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사람을 만난 뒤 인생이 바뀌었고 정말 행복해졌어요. 그 사람은 조지 에드먼즈(1920∼2006)라는 유타대 곤충학과 교수였어요. 하루살이의 세계적인 전문가였죠. 하루살이를 채집하러 세계 각국을 다니다가 우연히 한국에 와서 만나게 됐습니다. 그분과의 만남은 정말 우연이 많았어요. 한 한국계 미국인 교수가 개설한 영어 강의를 열심히 들은 적이 있어요. 이후 그 교수가 미국 학회에서 에드먼즈 교수가 "다음 달에 한국 간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저를 조수로 소개했다고 해요. 1976년 봄 김포공항에 내린 에드먼즈 교수는 가방을 끌고 제가 있던 서울대 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와 제 이름을 부르면서 찾았죠. 밑도 끝도 없이 "네가 내 조수다"라고 하더니 다음 날부터 1주일간 함께 전국의 개울을 뒤지러 다녔어요. '도대체 나이도 지긋한 양반이 무슨 망령인가' 싶었죠. 남의 나라에 와서 관광이나 쇼핑은 하지 않고 개울에서 첨벙거리다가 간다고 하니까 말이죠. 짧은 영어로 도대체 뭐 하는 분인지 물었어요. 그랬더니 하시는 말이 "미국 유타대학 교수인데 솔트레이크시티가 내려다보이는 저택에서 금발 미녀랑 살고, 플로리다주 탬파베이 바닷가에는 별장이 있다. 하루살이 채집하러 세계를 돌아다녔는데 한국이 102번째 나라"라는 거예요. 요즘 말로 하면 정말 '뿅' 갔죠. 영감님처럼만 살면 그 이상 뭘 바라겠어요. 교수님은 그러려면 미국으로 유학을 오라고 했죠. 그리고 미국의 대학 리스트를 쪽지에 적어줬어요. 그 쪽지는 가보(家寶)로 물려주던가 무덤에 가지고 들어가려고 합니다. 이후 제가 박사학위를 하러 하버드대에 가니까 "설마 네가 거기까지 갈지는 몰랐다"고 하시더군요. 생각할수록 그분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싶어요. 그분이 그 무렵 제 삶에 나타나 주지 않았으면 지금 뭐 하고 살고 있을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저한테는 하늘이 보내준 천사였죠.

-- 생물학자, 생태학자, 사회생물학자, 동물행동학자, 통섭교수 중에서 어떻게 불리고 싶습니까.
▲ 오랫동안 생물학자가 제일 좋았어요. 사실 정확하게 따지면 저는 사회생물학자죠. 연구해온 대상 동물이 10여 가지 되는데 모든 연구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바로 '사회'더라고요. 혼자 사는 동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죠. 호랑이를 만나면 신기하긴 하겠지만 연구할 마음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동물들이 뭔가 모여 있으면 궁금합니다.

-- 모여 사는 동물에 관심을 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 사실 저는 전형적인 문과 학생입니다. 어쩌다가 이과로 잘못 밀려갔죠. 만약 고등학생 때 교장 선생님이 문과로 가겠다는 것을 받아주셨다면 사회학과를 선택했을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사회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사교적이고, 사람들하고 같이 지내는 것을 좋아했죠. 이 동물들은 왜 모여 살면서 부대끼고 서로 헐뜯고 사랑하고 부둥켜안고 살아갈까. 이런 것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인가 봐요.

-- 어떤 동물을 연구했나요.
▲ 박사학위 논문은 민벌레라는 아주 희귀한 곤충을 연구해서 받았어요. 열대지방에 썩어가는 나무껍질 밑에 사는 몸길이가 2㎜에 불과한 곤충인데 아무도 연구하지 않아서 최고의 권위자가 됐죠. 이후 개미, 까치, 긴팔원숭이를 연구했고 5년 전부터는 돌고래를 연구하고 있어요. 한 우물을 파야 하는데 워낙 오지랖이 넓고 관심사가 많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이렇게 다양한 동물을 연구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994년 서울대에 왔는데 연구비가 없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찾아와 침팬지, 돌고래 등 다양한 동물을 연구하겠다는 거예요. 저도 민벌레를 연구하려면 해외로 가야 하는데 당시 해외에 대해서는 연구비를 지원해 주지 않아 개미를 연구하기로 했죠. 연구실 건물 바로 옆에서 연구했는데 학생들에게 통하지 않더라고요. 제 연구를 접고 학생들이 하고 싶어하는 연구를 최대한 찾아보자고 했죠. 같이 이마를 맞대니까 돌파구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다양한 동물을 연구하게 됐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동물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어 있어요. 저는 제자 잘 길러낸 거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 "엄마가 정해주는 대로 따라가는 요즘 아이들"

--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철학이 있습니까.
▲ 서울대에 부임했더니 석사 논문 발표회가 있더군요. 석사들을 모아놓고 15분씩 발표를 시키는 거예요. 질문을 하나도 하지 않으면 섭섭해 할 것 같아서 첫 번째 발표자한테 "그런 연구를 왜 하기로 했느냐"고 질문했어요. 그런데 답변을 하지 않는 거예요. 이후 발표자들한테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모두 대답을 하지 않았죠. 결국 한 명이 "지도교수가 하라고 했다"는 거예요. 석사나 박사학위는 그 분야의 대가가 됐다는 것이 아니라 홀로 세상에 나올 준비가 됐다는 증명이죠. 교수가 준 것을 받아서 하면 자기 혼자 일을 못하겠죠. 요즘 아이들은 엄마가 정해주는 대로 따라가니까 자립심이 전혀 없어요. 상사한테 야단맞았다고 엄마가 상사에게 전화하는 이상한 일도 생기고 있죠. 저는 학생들에게 어떤 연구를 하라고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스스로 연구 계획서를 쓰고 저를 설득해야 연구를 시작하게 했죠. 지금 생물학 분야에서 제 제자들이 모두 최고예요. 자부심이 무척 큽니다.

-- 동물을 연구하며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쓴 고래 이야기에 대해 독자들의 의견이 가장 많은데 고래는 동료에 대한 사랑이 끔찍해요. 폐로 숨을 쉬는 고래는 바다에 가라앉으면 죽는데 동료가 다치거나 힘이 달리면 등으로 받쳐서 끌어올려 숨 쉴 수 있게 해주죠. 동료가 그물에 걸리면 주변을 떠나지 않고 빼내려 노력하기도 합니다. 독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읽고 "사람보다 낫다"고 해요. 동물이 사람보다 나은 면이 참 많죠.

-- 주변의 자원을 고갈시킬 정도로 경쟁하는 것은 인간과 개미뿐이라고 하셨습니다.
▲ 우리는 지나치게 경쟁하며 살고 있어요. 이건 다윈 선생님의 죄가 조금 있는 것 같아요. 다윈은 현대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생존경쟁을 무척 강조하죠. 적자생존을 영어로 'Survival of the fittest'라고 하거든요. 정확히 번역하면 '최적자 생존'이죠. 가장 잘 적응한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다 죽어라처럼 들리죠. 사람들은 2등을 하면 마치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심하죠.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아나운서가 "너무 안타깝게 동메달을 받았다"고 했어요. 세계 72억 명 중에서 3등 했는데 그걸 보고 안타깝다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이번 평창올림픽을 보면 동메달을 받은 선수들한테도 국민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줬어요. 우리도 성숙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나부터'가 너무 팽배한 것 같아요. 인간의 눈으로 동물들을 보면 그들이 손해 보는 것 같고, 모자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물들은 서로를 돕는 행동을 하는 거예요. 이런 점도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리더가 너무 나대면 조직은 발전 못 해"

-- 생태원장을 그만두고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란 책을 냈는데 이 책에서 강조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 이 책에서 제시한 '경영 10계명' 중 두 번째 계명이 '가치와 목표는 철저히 공유하되 게임은 자유롭게'입니다. 여왕개미로부터 배운 지혜죠.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여왕개미가 모든 일을 진두지휘하는 거로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여왕개미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알만 낳습니다. 다른 일에는 조금도 관여하지 않죠. 다른 일은 일개미들이 '민주적'으로 알아서 해요. 다수의 일개미가 어떤 일을 하면 다른 일개미들은 다른 일을 하다가도 다수를 따라 그 일을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소수의 일개미가 하는 일은 안 되는 거에요. 어떻게 보면 완벽한 민주주의죠. 모든 리더가 여왕개미만큼만 하면 좋겠어요. 리더가 나서서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면 조직의 창의성이 완전히 죽어버립니다. 네 번째 계명은 '이를 악물고 듣는다'예요. 우리나라 대통령을 많이 모신 분한테 "MB는 왜 저렇게 말이 많아요" 했더니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다 말이 많았다"고 하는 거예요. 심지어 과묵하던 최규하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니까 말이 많아졌다고 해요. 사람이 최고 지위에 오르면 지시할 일이 생기고 말이 많아지는 거죠. 그런데 리더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 뒤로는 모두 따르는 모드가 되어 버려요. 말하고 싶어 미치겠어도 이를 악물어야 해요. 그렇게 해야 조직의 역량이 축적됩니다. 리더가 너무 나대면 조직은 발전하지 못합니다.

-- 기후변화협약 명예대사로서 지금 환경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요.
▲ 재작년에 '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가 왔을 때 대담을 한 적이 있어요. 하라리는 "인류가 몇백 년 안에 멸종한다"고 했는데 저는 "이번 세기 안에 인류가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죠. 무척 긴장하고 자극을 받았나 보더라고요. 이건 농담이 아닙니다. 기후변화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요.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집어 던지면 튀어나와 살지만 냄비에 넣고 서서히 끓이면 죽는다는 얘기처럼 환경도 그렇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아무리 심각하다고 얘기해도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생태계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습니다. 어느 한 종이 사라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것을 몰라요. 복잡한 먹이사슬 그물에서 한 종이 멸종했는데 그게 너무 많은 다른 종들과 관련 있는 핵심종이라면 파급효과가 엄청날 겁니다. 아인슈타인이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류가 멸종한다"고 했는데 장난으로 받아들일 이야기가 아니에요. 실제 꿀벌이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꿀벌은 농작물의 수분(受粉)을 80% 정도 담당하는데 꿀벌이 사라지면 열매를 맺지 못해서 식량 대란이 일어날 거예요. 그랬을 때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냐는 아무도 장담 못 하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끔찍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에요. 물론 이런 난장판 속에서도 인간은 살아남을 방법을 찾긴 찾을 거로 생각합니다.

-- 환경문제 중에서 가장 시급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기후변화 문제가 가장 시급하죠. 많은 환경문제는 일본의 미나마타병이나 낙동강 페놀 사건처럼 국지적이에요. 하지만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인 문제죠. 일을 저지른 놈과 당하는 놈이 따로 있어요.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어서 대처가 어려우니까 상황이 아주 심각하죠. 국지적인 환경문제는 해당 지역에서만 협의를 보면 해결이 되지만 이건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과 미국이 가장 문제예요. 책임을 지라고 하면 중국은 그나마 조금 나은데 미국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이상한 짓을 해요. 똥을 싼 사람이 치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풀기 참 힘든 문제입니다.

◇ "적도 충분히 알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

-- "알아야 사랑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 모든 것을 알아야죠. 알아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왕따도 모르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왕따당하는 아이가 어떤 집에서 생활하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 알면 왕따를 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을 거예요. 저를 해코지하던 사람도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하면 계속 미워할 수 있을까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나 심지어 적도 충분히 알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저지른 것은 몰라서 그런 거죠. 강에 포크레인을 끌고 들어가서 마구 파헤치면 쉬리, 피라미, 줄납자루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 알면 그렇게 못하죠. 몰라서 거침없이 저지르는 거예요. 저는 자연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자연을 보호하자고 구호를 외칠 시간에 더 연구하고 배워야 해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알게 되면 자연을 해치라고 등을 떠밀어도 하지 않을 겁니다.

-- 인생을 이모작하라고 했는데요.
▲ 옛날에는 환갑 전후로 죽어서 걱정할 게 없었는데 지금은 오래 살잖아요. 은퇴하고 살아갈 인생이 너무 길어졌죠. 은퇴 후 인생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낭패 보지 말자는 거예요. 살아갈 세월이 긴데 대책 없이 살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경제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물론 취미생활도 마련해야 하죠. 너무 바빠서 저는 아직 준비하지 못했지만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 2012년에 제인 구달 박사와 생명다양성재단을 만들었는데 국립생태원장 하면서 돌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부흥시켜야 할 것 같아요. 구달 박사는 침팬지를 연구하다가 어느 날 자연이 사라져버리면 침팬지도 없어질 거란 생각에서 연구를 접고 자연보호활동에 뛰어들었어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연보호운동을 하고 계시죠. 구달 박사를 조직적으로 도와드리기 위해 재단을 함께 만든 거죠. 재단을 통해 환경보호, 삶의 질, 생명의 소중함 등을 알리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올해 '개미제국의 발견' 개정판도 내려고 해요. 이번에는 만화로도 나옵니다. 또 다윈의 '종의 기원' 번역본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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