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한 점이라도 찾고 죽어야지"…38년째 마르지 않는 눈물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찾아야지. 내 아들 꼭 찾고 죽어야지."
5·18 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아들 임옥환(당시 17세) 군을 38년째 기다리는 김진덕(74·여) 씨는 17일 시신 없는 빈 무덤 묘비를 붙들고 오열했다.
조선대부속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던 아들은 1980년 5월 21일 사라졌다.
광주에서 하숙하던 임 군은 고향인 전남 고흥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끊기자 친구 3명과 함께 산에 올랐다.
산 너머 화순에 고흥행 버스가 다닐 것으로 생각해 하숙집을 나섰다.
이날 광주에서는 계엄군이 집단발포해 수많은 시민, 학생이 거리에 피를 쏟았다.
성난 시민들이 항쟁 대오에 합류하자 공수여단 계엄군 병력은 임 군 등이 길을 잡은 광주-화순 경계지로 퇴각했다.
임 군과 친구들은 화순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계엄군과 마주쳤다.
친구들은 도망치거나 붙잡혔다가 나중에 풀려났지만, 임 군은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임 군 부모가 소식을 듣고 광주 하숙으로 달려왔을 때 방 안에는 친구가 가져다 놓은 가방이 놓여있었다고 한다.
38년째 기다림을 이어온 임준배(82)·김진덕 씨 부부는 5·18 38주년을 하루 앞둔 이 날도 국립 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을 찾아 눈물을 쏟아냈다.
임 씨는 "우리가 살 날이 얼마나 남았겠느냐. 아들 뼈 한 점이라도 찾아서 묻어주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시가 인정한 5·18 행방불명자는 82명이다.
2001년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의 무명열사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6명 유해를 수습했지만 76명은 여전히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5·18 당시 사라진 240여명을 찾는 가족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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