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석원 세필 동물화에 담긴 삶의 비애
가나아트센터서 '희망낙서' 전 개막…신작 40여점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스무 살 무렵부터 체질이 바뀌면서 기침이 없어졌는데 요즘 들어 다시 기침해요. 오늘도 아침부터 계속 기침을 많이 하네요."
14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화가 사석원(58)이 나직이 말했다. 작가는 기침 이야기를 하다 말고, 5년째 병중인 82살 아버지를 언급했다. 영원히 소년일 것 같던 아버지는 아들도 알아보지 못한 채 사경을 헤맨다. "그 모습에 '나의 현재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점점 쇠락하고 소멸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18일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개막하는 개인전 '희망낙서'는 "다른 것보다 내 '마음'을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그린 신작 4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예전 같지 않은 건강과 아버지 오랜 투병, 예순이라는 고비를 앞둔 헛헛함 등이 그를 '출범'과 '희망낙서', '신세계' 연작으로 이끌었다.
전시는 격랑을 건너는 동물 군상을 그린 '출범'이 시작을 알린다. 작품마다 아슬아슬한 자세로 배에 매달린 고릴라들이 양이며 말이며 낙타, 토끼를 필사적으로 보듬어 안고 있다. 십자가를 진 채 처연한 눈빛으로 관람객을 보는 고릴라도 있다. 작가는 "사람보다 더 순수한 눈빛을 가진" 고릴라에 가장을 투영했다.
"가장의 삶은 숙명적인 부분이 있죠. 우리가 인생을 항해라고 하잖아요. 배를 타고 그 바다를 건너면서 자기가 책임져야 할 것들을 책임지는 가장을 생각했죠."
'출범'은 원색 물감을 눌러 짜 두툼하게 바른 동물그림으로 사석원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낯설지도 모른다. 작가가 "한땀 한땀 가장의 비애를 담고자" 평소 쓰지 않는 세밀한 붓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2층을 채운 '희망낙서' 연작은 '출범'보다 한결 밝은 동물 그림들이지만, 작품 기법 역시 변화를 보인다. 작가는 예전처럼 두껍게 물감을 바른 캔버스 위를 긴 막대기로 휘저었다. 원 물감이 쓸려나간 흔적은 지직대는 TV 화면을 떠올리게 한다. 가나아트센터는 이를 두고 "이제는 흐릿한 기억으로 남은 청춘 잔상이면서, 청춘-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의지 상징"이라고 해석했다.
마지막 '신세계'에서는 평소 찾아볼 수 없던 여성 누드들이 나왔다. 당나귀와 수탉, 소, 비단잉어를 여성 누드와 함께 담아내거나, 상반되는 원색들로 화면을 구성한 작품들이다.
전시는 6월 10일까지. 문의 ☎ 02-7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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