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한 채찍, 더 큰 당근'…트럼프, 비핵-경제지원 '빅뱅카드'
볼턴 "테네시로 반출" 핵폐기장소 특정…"생화학무기도 폐기"
폼페이오, 대북민간 투자 첫 거론…'원조는 아니다' 변형된 마셜플랜?
'최대한의 압박'·'최대한의 보상' 동시 테이블 올려 협상력 극대화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12일로 정해진 북미정상회담을 겨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더 강한 채찍'과 '더 큰 당근'을 제공했다.
북한이 가능한 한 신속히 핵 프로그램을 완전 폐기하는 것을 전제로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대대적으로 대북 경제지원을 하는 이른바 '빅뱅 접근법'을 구체화한 것이다. 김 위원장으로부터 확실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끌어내기 위해 가용한 최대치의 협상카드를 던진 것으로 평가된다.
'최대한의 압박'과 '최대한의 보상' 카드를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려놓고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전략적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매파 중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CVID의 강경 버전인 PVID(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다시 꺼내 들며 '신속한 일괄타결'식 접근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특히 북핵 폐기의 약속만을 믿고 섣불리 제재를 완화하거나 경제지원하는 등의 '보상'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볼턴 보좌관은 13일(현지시간) ABC 방송 인터뷰에서 '반드시 PVID가 이행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맞다. 그것이 보상 혜택이 흘러들어 가기 시작하기 전에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라며 "우리는 비핵화 절차가 완전하게 진행되는 것을 원한다. 그리고 그것은 불가역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볼턴 보좌관은 특히 북한의 PVID를 위해 플루토늄 재처리 뿐만 아니라 우라늄 농축 능력까지 포기할 것을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타협 불가' 의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비핵화가 그것의 핵심"이라면서 "그것(비핵화)은 단순히 핵무기만 뜻하는 게 아니라 북한이 과거 여러 차례 동의했던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능력 포기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보다 의미있게 볼 대목은 볼턴 보좌관이 북한이 폐기할 핵 시설과 핵 물질을 보관할 미국 내 장소까지 공개적으로 특정한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그 결정의 이행은 모든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 핵무기를 폐기해 테네시 주(州)의 오크리지로 가져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테네시 오크리지는 미국의 핵과 원자력 연구 단지가 있는 지역이자 과거 리비아 핵 협상을 통해 폐기한 리비아의 핵시설과 핵물질을 보관한 곳으로, 핵폐기 종말처리장으로서의 상징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볼턴 보좌관은 협상조건에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뿐 아니라 대량파괴무기(WMD)의 다른 종류인 생화학무기도 포함돼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현재 북미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는 핵 프로그램 폐기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관측과는 달리 폐기의 범위를 생화학무기까지 확장시킨 것이어서 주목된다.
그런 한편으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국이 주도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확실한 당근'을 내놨다. 특히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조건으로 처음으로 대북 민간투자를 언급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폭스뉴스·CBS 방송에 잇따라 출연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면 미국의 민간투자가 허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에너지(전력)망 건설과 인프라 발전을 미국의 민간 부문이 도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은 농업 장비와 기술, 에너지가 절박하게 필요한 상황인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으로부터 우리의 기업인과 모험가, 자본 공급자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이들과 이들이 가져올 자본을 (핵 포기 대가로) 얻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1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북한이 빠르게 비핵화를 하는 과감한 조치를 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우리의 우방인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이행한다면, 제재 완화 또는 해제에 나서는 동시에 미국 민간자본의 대북 직접 투자까지 허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쉽게 말하자면 평양에 트럼프 타워가 건설되고 맥도널드와 스타벅스가 진출하도록 돕겠다는 뜻이다.
일각에선 '북한판 마셜플랜'이 추진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민간투자가 전면에 등장한다면 그 성격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경제부흥을 위해 실시했던 대규모 원조계획인 마셜 플랜과 달리, 대북 경제원조(economic aid)는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볼턴 보좌관은 CNN 방송에 출연해 "나라면 우리로부터 경제원조는 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에 대한 전망은 한국의 방식대로 정상 국가가 되고 세계 각국과 예의 있는 행실로 상호 작용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주목할 대목은 핵폐기에 따른 보상문제를 놓고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기류를 반영하는 볼턴 보좌관과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맡고 있는 폼페이오 장관이 온도차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볼턴 보좌관은 '리비아 모델'에 따라 핵 폐기 완료 시까지 일체의 보상이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으나, 폼페이오 장관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유인책을 제시하면서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는데 동의한다면 대북제재를 해제하겠다"고 언급한 것이다.
현재로서는 두 사람의 이 같은 메시지 발신이 북한을 향한 '역할분담'의 의미가 큰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 김정은 정권을 대하는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기류에 미묘한 엇박자가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없지 않아 주목된다.
j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