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로 가득찼던 평양 13시간…'007작전' WP·AP기자 동행기(종합)
"폼페이오, 미리 억류자 석방 보장 못 받아"…누굴 언제 만날지도 '깜깜이'
오찬 후 오후 4시부터 김정은 위원장과 90분 담판에서 최종 결정된 듯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억류 미국인 3인을 구출하기 위해 재방북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함께 평양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수행 기자들도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숨 막히는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WP) 캐럴 모렐로 기자는 10일 '국무장관과 함께했던 북한 출장'이라는 제목으로 방북 취재 뒷얘기를 소개했다. AP통신 매슈 리 기자도 12일 방북 취재기를 실었다.
폼페이오 장관의 이번 방북에는 이들 두 명의 기자만 동행했다.
이들이 국무부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은 건 지난 4일 오후. 평소와 달리 구체적 일정 등에 대한 사전설명 없이 '일회용 여행 금지국 방문허가 도장이 찍힌 새로운 여권을 받아두라'는 지침만 떨어졌다. 그리고 조그만 짐을 꾸려놓고 언제가 됐든 연락이 오면 곧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두라는 것이었다. 모렐로 기자는 "난데없이 찾아온, 불확실성과 비밀로 가득 찬 초대였다"고 말했다.
이 비밀스러운 출장에 대해 그 누구한테도 미리 말하지 말라는 '함구령'도 떨어졌다.
이들 2명의 기자는 조용히 사무실 문을 닫고 국무부 관리들에게 "우리가 짐작하는 그곳에 가는 게 맞느냐"고 물어봤고, 이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매슈 리 기자는 기사에서 "당시 워싱턴에는 폼페이오 장관이 조만간 다시 북한에 가서 억류된 3명의 미국인을 데려올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며 "내가 고립된, 독재국가를 두 번째로 방문하게 된 것"이라고 적었다.
리 기자는 18년 전인 지난 2000년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역사적인 북한 방문 때도 AFP통신 소속기자로 동행한 경험이 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의 방북은 현직 미 국무장관으로서는 최초였다.
리 기자는 80여 명의 기자들을 대거 동행시켰던 당시 올브라이트 전 장관의 방북과 달리 이번에는 단 두 명의 기자를 마치 독립된 증인처럼 세워 놓고 비밀 작전을 수행하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그로부터 3일 뒤인 7일, 이들 기자는 출발 4시간 전 공지를 받고 국무부 청사로 향했다. 그리고 오후 7시 45분, 이들을 포함한 방북단 일행은 두 대의 밴에 나눠 타고 앤드루스 공군 기지로 향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공군 기지로 도착했다. 곧이어 백악관과 국가안보회의(NSC), 그리고 국무부 직원들이 하나둘씩 비행기에 탔다. 기자들은 이들로부터 '북미정상회담 준비'가 이번 방북의 주요 미션이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의사와 정신과 의사, 현장에서 곧바로 새 여권 발행 권한이 있는 영사국장 등이 함께 탑승한 걸 보고 북측의 억류자 석방 '선물' 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폼페이오 장관도 평양에 도착하기 전에는 이에 대한 보장을 받지 못했고, 그날 그의 참모들도 평양에서 몇 시에 누굴 만나게 될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고 모렐로 기자는 적었다. 실제 평양행 비행기 안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억류자 석방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았지만,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진 않았다.
비행기에서는 와이파이가 안 터진 탓에 북한으로 가던 길에 급유차 들른 일본 요코타(橫田) 공군 기지에 도착해서야 기자들은 기사를 송고할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사실을 공개한 뒤였다.
이들은 이곳에서 이번 출장 기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샤워했다고 한다.
폼페이오 장관 일행을 태운 비행기가 평양 공항에 도착한 건 한국시간 9일 오전 8시. 무시무시하리만치 적막이 감돌았던 공항에는 레드 카펫이 깔린 위로 3명의 북한 관리가 나와 '영접'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들과 악수를 한 뒤 메르세데스 리무진에 올라탔고, 나머지 일행은 메르세데스 버스에 몸을 실었다. 수행 기자단 2명은 파란색 시트와 '미국 길'(American Road)이라고 적힌 판이 놓인 화려한 대시보드 등으로 꾸며진 널찍한 쉐보레 밴으로 안내를 받았다.
차량 행렬은 한적한 4차선 도로를 따라 15마일 정도 평양 시내 쪽으로 달려 화려한 대리석 바닥과 벽으로 꾸며진, '호화로운' 고려호텔에 도착했다.
폼페이오 장관과 그 일행들이 38층에 있는 방으로 안내를 받은 뒤 기자 2명은 이로부터 10시간을 호텔 로비에서 보내며 '대기'해야 했다.
모렐로 기자는 "휴대폰과 와이파이도 안 터지고 정부 경호원 없이는 호텔도 떠날 수 없는 고립 상태였다"며 호텔 내 식료품점과 공예품점, 선물가게 등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선물가게 안에는 '자유의 여신상 박살 내자'등의 반미 선전 문구들이 적힌 엽서들과 여러 언어로 번역된 김정은 위원장의 저서들이 비치돼 있었다고 한다.
호텔 문밖에 나섰을 때는 노동당 번호판이 달린 차량이 지나가면 경례를 하는 여성 교통경찰이 눈에 띄었고, 러시아워였는데도 30초 동안 4대꼴로 차가 다녔다고 모렐로 기자는 전했다.
리 기자는 18년 사이 평양 시내가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높은 건물이 많이 들어서고, 다른 나라 대도시들에 비하면 여전히 적긴 하지만 차량도 많아졌으며 신호등도 새것으로 바뀌었다고 적었다.
기자들이 대기하는 사이 국무부 관리가 내려와서 위에서 진행되는 상황들을 '업데이트'해줬다고 한다. 폼페이오 장관이 정상회담 준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 북한 관리와 만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폼페이오 장관을 환영하는 오찬이 열렸고, 기자들은 건배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잠시 위로 올라갔다.
철갑상어와 오리, 랍스터, 스테이크, 잣죽, 옥수수 수프, 바나나 아이스크림 등이 나왔다.
모렐로 기자는 "미국이 그토록 주민들을 착취하는 나라라고 맹비난해왔던 이곳에서 너무 많은 음식이 차려지자 폼페이오 장관의 일부 보좌진들은 먹으면서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고 적었다.
오찬 후 국무부 관리는 이들 기자에게 김 위원장의 비서실장 전언이라며 김 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을 오후 4시에 만날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기자들은 로비에서 대기해야 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김 위원장을 만나고 90분 후인 오후 5시 30분에 돌아왔을 때 기자들은 폼페이오 장관을 붙잡고 '좋은 뉴스를 기대해도 되느냐'고 물었고, 폼페이오 장관은 이에 얼굴에 미소를 띤 채 '행운의 사인'인 손가락을 꼬는 제스처로 낭보를 귀띔했다.
그로부터 국무부 관리가 15분 뒤에 "두 명의 북한 관리가 '특별사면' 소식을 들고 폼페이오 장관에게 왔으며 (석방이)'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전했다"는 뉴스를 기자들에게 알렸다. 오후 7시에 억류자 3인이 풀려날 것이란 소식이었다.
곧이어 대기하고 있던 의사와 영사업무 국장이 다른 호텔에 머물고 있던 억류자들을 태우러 나가는 모습이 로비에서 눈에 띄었고, 기자들도 '바로 밴에 다시 타라'는 지침을 듣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이들 기자는 억류 미국인들에게 말을 걸 수 없으며, 가까운 거리에서 쳐다보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을 전달받았다. 이들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강한 지침이 있었다고 한다.
먼저 비행기에 올랐던 기자들은 오후 8시 25분 어둠 사이로 멈춰선 밴에서 여러 명이 나와 비행기에 올라타는 실루엣을 볼 수 있었다.
억류됐던 미국인들은 비행기 중간 부분에 탔고, 기자들은 후미 부에 탔는데, 두 공간은 양쪽 화장실 사이에 비스듬히 설치된 커튼으로 격리돼 있었다고 한다. 기자들은 화장실도 오른쪽 것만 사용하라는 지시를 들었다.
억류자들이 석방돼 미국으로 공식적으로 넘겨진 지 1시간이 채 안 된 오후 8시 40분 비행기는 이륙했다. 요코타 기지에서 억류자들은 다른 소형비행기로 옮겨졌고, 폼페이오 장관과 수행단을 태운 비행기는 억류자들이 탄 비행기보다 20분 먼저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기자들은 멀리서 자유의 몸이 된 억류자들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맞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모렐로 기자는 "우리는 평양에 머물면서 호텔 로비를 거의 떠나지 못하면서 제대로 본 건 전혀 없었다"며 "그러나 이 수수께끼 같은 정권을 다루는 미국의 외교, 그리고 국무부를 다시 되살리려는 신임 장관의 노력을 일별하는 경험이었다"고 적었다.
리 기자는 "2000년 방북 때 영화 '트루먼 쇼'에 빗대어 방북기를 썼었는데, 공항 활주로에 억류자들이 내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을 맞이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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