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유조선 화재, 재난매뉴얼 지켜 대형 참사 피했다
유류 4천700t·승선원 21명…하마터면 인명사고로 이어질 뻔
탱크폐쇄 산소 차단, 소화 장비로 차분한 초기 진화 시도
(통영=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인명피해는 물론 기름 유출로 인한 대규모 환경오염 위험까지 있던 서니 오리온호 화재가 별다른 피해 없이 진화된 것은 천우신조나 마찬가지였다.
8일 오전 9시 10분께 7천700t급(길이 124m) 유조선인 '서니 오리온호'는 경남 통영시 홍도 남방 33㎞ 해상에서 항해 중이었다.
이 배는 믹스 자일렌이라는 고인화성 유류 물질 4천700t을 싣고 지난 4일 홍콩에서 출항해 울산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시 선박 3번과 4번 창고(탱크) 사이에서 불이 난 것을 인지한 승선원의 조난신고가 해양경찰청 국제안전통신센터와 통영VTS(해양교통관제시스템)를 통해 통영해양경찰서에 전달된 시점은 오전 9시 14분께였다.
신고를 받은 해경은 즉시 경비정과 헬기를 현장으로 급파했다.
그러나 육지에서 30㎞ 넘게 떨어진 바다에서 불이 난 데다 파고가 높고 바람도 강해 경비정과 헬기의 신속한 현장 접근이 어려웠다.
현장에 경비정이 도착한 시간도 화재 1시간이 지난 오전 10시 18분께였다.
해당 선박은 불이 난 뒤 1시간 동안 꼼짝없이 바다 한가운데 갇혀 있던 셈이었다.
다행히 선박은 별다른 피해 없이 화재 20분 만인 오전 9시 30분께 자체진화에 성공,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해경은 불이 난 뒤 선박이 자동으로 창고를 폐쇄해 산소 공급을 차단하고 스프링클러 기능을 하는 고정형 소화기가 제때 작동해 대형 참사를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이 난 지점도 유류 물질이 들어있지 않은 빈 탱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경 관계자는 "해당 선박은 2010년 건조된 비교적 최신 유조선으로 소화장치가 잘 갖춰지고 화재진화 매뉴얼도 충실히 이행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경에 따르면 항해 중인 선박에 불이 나면 승선원들은 즉각 구조요청을 하고 격실 폐쇄로 산소 차단, 소화 장비로 초기 진화 시도 등을 해야 한다.
만약 초기진화에 실패했을 때는 차분하고 질서 있게 구명정으로 옮겨 선박을 탈출해야 한다.
결국, 매뉴얼에 따른 차분한 대응과 빈틈없는 안전 관리가 대형 참사를 피하게 한 일등공신이었다는 뜻이다.
만에 하나 유류 물질이 가득 찬 탱크에 불이 나 삽시간에 불길이 퍼져 도저히 수습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면 승선원들의 생명은 담보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게다가 자일렌은 유출 시 용해속도가 느리고 높은 밀도로 해면상에 넓게 퍼지는 특성이 있다.
자일렌까지 해상으로 흘러나갔을 경우 올해 초 중국 동부 해상에서 침몰해 연료유가 유출된 이란 유조선 '상치(Sanchi)호'의 경우처럼 대규모 방재작업까지 이어졌을 수 있다.
인명피해에 육상에서 수십㎞ 떨어진 공해 상에서 방재작업까지 감내해야 하는 국제적 환경재앙까지 닥칠 수도 있었다.
해경 관계자는 "정확한 사고 경위와 선박구조 등은 입항 뒤 정밀조사에 들어가야 파악될 수 있다"며 "다만 승선원들이 자체적으로 대응을 잘하고 하늘이 도왔는지 운까지 좋아 큰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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