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마크롱 1년] ①혜성처럼 등장해 지지율 반토막…"개혁중단 없다"
서른아홉 정치신예, 대권 잡고 총선 압승…프랑스 정치사 새로 써
노동유연화, 정치개혁, 국철개편 등 국정과제 '동시다발' 추진
'행동하는 대통령' 높은 평가…개혁피로감·권위주의 논란은 악재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초유의 선거혁명을 이룩하며 서른아홉의 나이에 대권을 거머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로 취임 1년을 맞는다.
지난 1년간 국내와 외교무대에서 '마크롱'이라는 브랜드를 확실히 각인시킨 그에게는 '개혁의 전도사', '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수호자'라는 찬사와 함께 '권위주의적 리더', '의회 민주주의의 파괴자' 등 상반된 평가들이 존재한다.
선출직 공직 경험이 없는 투자은행가 출신의 '정치신인' 마크롱은 작년 대선과 총선에서 잇따라 완승하며 프랑스 정치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개혁에 대한 피로감과 권위적 리더십이라는 비판이 겹쳐지며 지지율이 반 토막 나는 등 고전하고 있다.
◇유권자 절반 이상 "대통령에게 실망"…최근 들어 지지율 회복세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출범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등으로 포퓰리즘의 흐름이 굳어지는 것 같던 서구 정치권에서 마크롱의 혜성 같은 등장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개방경제와 다원주의를 옹호하는 그는 전후 반세기 넘게 주류의 지위를 누려오다 최근 위기를 맞은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대변할 총아로 여겨졌다.
하지만 마크롱은 국내 여론의 외면을 받으며 고전 중이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 조사에서 취임 직후 지지율은 64%였지만, 작년 말에는 반 토막 수준인 36% 수준까지 급락했다.
거의 같은 시기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80%가 넘는 것을 고려하면 마크롱의 인기는 초라한 수준이다.
입소스 소프테리아의 최신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4%가 대통령에게 실망했다고 응답했다.
마크롱의 지지율은 프랑스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도 낮다.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악명높았던 전임 프랑수아 올랑드보다는 약간 나은 수준이고 그 전의 니콜라 사르코지와는 엇비슷하다.
무엇이 이처럼 대통령의 지지율을 급락하게 한 걸까.
낮은 지지율은 어찌 보면 예견된 측면이 있다. 대선에서 결선투표제를 운용하는 프랑스에서 마크롱은 1차 투표 때 2위로 결선에 올라 결선투표에서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을 상대로 승리했다.
그런데 1·2차 투표 결과를 들여다보면 프랑스 특유의 극우 견제 심리가 발동해 마크롱에게 몰표가 간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즉, 마크롱을 지지해서라기보다 극우세력이 집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크롱에게 마지못해 표를 준 유권자들이 다수라는 점에서 마크롱은 태생적으로 지지기반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의회 건너뛰고 권위주의 리더십 논란…동시다발 개혁피로감도 한몫
마크롱이 대통령의 권위를 강조하면서 의회를 건너뛰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프랑스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게 한 배경이 됐다.
마크롱의 지지율은 작년 9월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하는 개정 노동법을 밀어붙이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마크롱은 의회를 건너뛰는 방식의 법률명령을 이용했다.
이는 국가적 위기 상황이 아니면 잘 쓰지 않는 방식인데 노동시장 개편을 국가적 시급 과제로 보고 밀어붙인 것이다. 그러자 대통령이 의회민주주의를 무력화했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동시다발적인 국정과제 추진에 대한 피로감도 지지율 하락에 한몫했다.
마크롱은 평소 자신이 가장 큰 프랑스 병으로 꼽아온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편한 것에 더해 경찰의 권한을 강화한 방향의 테러방지법 개정, 대입제도 개편,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줄이는 정치개혁, 철도 파업을 촉발한 국영철도(SNCF) 개편 등 하나같이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은 과제들을 쉴 새 없이 밀어붙였다.
여기에 공무원 감축과 연금개혁 등 산적한 과제들이 대통령의 '고'(Go) 사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과단성 있는' 마크롱의 행동력은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훌륭한 덕목으로 꼽히지만, 전통적으로 노조의 입김과 평등주의 전통이 강한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의 친(親)시장 자본주의적 독주에 대한 반발심도 그만큼 강하다.
최근 여론은 그러나 마크롱에게 조금씩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지지율이 30% 후반에서 바닥을 찍은 뒤 한두 달 전부터 조금씩 반등해 기관별로 40∼45% 수준으로 오른 것이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지지율이 떨어졌다가 다시 반등한 사례는 없었다. 이는 "유권자들이 마크롱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겠다는 뜻"이라고 장 조레스 재단의 여론전문가 클로에 모랭 박사는 설명했다.
◇사회·공화당 모두 몰락…마크롱에 필적할 정치적 라이벌 없어
정치적으로 마크롱에게 유리한 점은 또 있다. 차기 대선이 4년 남은 상황에서 프랑스에는 아직 그의 정치적 라이벌이라고 할 만한 인물과 세력을 찾을 수 없다.
2차대전 종전 후 프랑스 정치를 양분해온 중도좌파 사회당과 중도우파 공화당을 대선과 총선에서 잇따라 완파한 마크롱에게는 현재 적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원도 마크롱이 창당한 중도신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가 과반의 제1당이다.
전 집권당이었던 사회당은 의석수가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 소수정당으로 전락했고, 제1야당인 중도우파 공화당도 의석수로 보나 조직력으로 보나 마크롱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
특히 경제정책에서 우파성향을 보이는 마크롱 정부를 상대하면서 공화당은 야당으로서의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대선 때 약간의 돌풍을 일으켰던 급진좌파 장뤼크 멜랑숑이 마크롱의 '제1 적수'를 자처하기는 하지만, 그의 지지율(4월 기준)은 현재 26% 수준에 불과하고, 대선에서 격돌했던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 역시 24%로 미미하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 후 유로존 경제회복세 등에 힘입어 성장률과 실업률 등 경제지표들이 일제히 개선 흐름을 보이는 것도 마크롱에게는 호재다.
이런 점들 때문인지 마크롱은 지지율 하락이나 권위주의 논란 등에 괘의치 않는다는 태도다.
그는 최근 호주 방문 시 한 기자가 노동절의 대규모 집회에 대한 입장을 묻자 "나는 그게 어떤 종류의 문제든지 피하지 않는다. 개혁은 중단없이 계속될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에게 휴일이란 없다"고 말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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