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1년] 70% 콘크리트 지지율 함수의 빛과 그림자
북미 극한 대치에도 놓지 않은 대화의 끈…한반도 봄 앞당겨
일관된 적폐청산 기조로 '비정상의 정상화'에도 소기의 성과
민생 개선·인사 검증·정당 간 협치 미흡은 여전히 큰 난제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앞두고 한국갤럽이 지난 4일 발표한 문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83%(2∼3일 전국 성인 남녀 1천2명 대상으로 설문,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의원회 홈페이지 참조)였다.
지난해 6월 첫째 주에 기록한 최고치(84%)보다 1%p 낮은 수치였으나 취임 1년을 맞은 시점에서 직무수행 긍정률은 역대 대통령들보다 월등히 높았다. 2위인 김대중 전 대통령도 취임 1년 당시 국정지지도는 60%였다.
문 대통령의 지지도를 떠받친 가장 큰 요인은 역시 남북관계 개선의 공이었다.
전쟁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국민의 안도감이 문 대통령의 지지율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취임 후 1년간 평균 70%대를 기록한 지지율 고공행진의 이면에는 여전히 곱씹어 볼 측면이 있다.
남북 해빙 무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뿐 전문가들은 국회의 정당 간 협치나 당청 간 의제 조율, 인사 문제 등은 개선돼야 할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 끈질긴 대화·압박 병행 정책…한반도 긴장→평화 분위기 극적 전환
문 대통령의 임기 첫 1년 중 가장 돋보였던 분야가 통일·외교·안보 분야라는 데 이견을 다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문 대통령은 평화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 남북 대화의 중요성을 지속해서 강조했다.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데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비핵화 담판'을 앞둔 현시점에서 문 대통령은 상당한 성과를 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한반도 위기가 거침없이 고조되고 있을 때 그것을 누그러뜨린 공이 분명히 있고 부정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구상이 여기까지 진전될 수 있었던 데는 한반도 관계 4강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동시에 끝까지 대화의 끈을 놓지 않은 뚝심이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전임 정권의 국정농단에 따른 리더십 부재 속에 무너졌던 4강 외교를 복원하며 핵실험 등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는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으로 맞섰다. 그 중추는 한미동맹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베를린 선언'과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냈고 취임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판문점선언까지 발표하기에 이른다.
역대 남북정상회담과 달리 정권의 국정 동력이 살아 있는 임기 초반에 이 정도 성과를 낸 것은 비핵화를 넘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평화정착 구상에 더 큰 기대를 하게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평화 구상이 어떤 결실로 마무리되느냐 하는 문제는 지난 1년보다 향후 여정에 더 크게 좌우될 거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신 교수는 "북미 정상이 완벽한 비핵화에 합의하지 못한다면 단기적 위기를 극복한 문 대통령의 공(功)과는 별개로 (문 대통령에 대해) 궁극적인 한반도 평화에 기여했는지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 촛불정신 이어받은 적폐청산으로 '비정상의 정상화' 추구
문 대통령은 정의가 바로 서고 특권과 반칙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라는 국민의 명령에 부응하고자 취임 직후부터 적폐청산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파격적 인사로 권력기관 개혁 의지를 드러냈고 부처별 적폐를 청산하는 데 공을 들이는 한편, 공공기관 채용비리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부분에 들어 앉은 비정상을 도려내기도 했다.
이는 '촛불'과 함께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배경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국민 사이에 자리 잡은 '촛불정신'이라는 정권의 정통성은 문 대통령이 적폐를 상대로 한 '무관용' 대응을 가능하게 했다.
유용화 한국외대 초빙교수는 "과거 정권의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 국민 주권을 유린한 처사, 범법행위를 공정하게 단죄하는 데 굉장히 적극적이었다"며 "그것이 국민이 원하는 바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원칙을 바로 세운다는 명분에 부합하는 일이었음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세력이나 정치적 반대파의 저항은 문 대통령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보복하기 위한 과거사 들추기 정치'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이어져 적폐청산의 동력을 약화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결국, 누가 봐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공정한 잣대를 마련하는 것이 문재인 정권에 남은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유 교수는 "적폐청산이 막연한 선과 악의 대립처럼 비치면 곤란하다"면서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 적폐청산의 원칙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점이 문 대통령의 숙제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고용 위기 해소 못 한 '일자리 대통령'
문 대통령은 취임 때부터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했다. 취임 당일 '1호 업무지시'가 일자리위원회 설치였다.
문 대통령의 구상은 안정적 일자리로 가계 소득을 늘려 내수를 활성화하면 그 성과가 기업 투자 증가, 고용 증대로 이어지게 해 성장의 선순환 고리를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 상황은 이런 구상이 그대로 구현됐다고 보기 어렵다.
올해 2∼3월 취업자 증가 폭은 23개월 만에 두 달 연속 10만 명대에 그쳤고 2월에는 취업자가 10만4천 명밖에 늘지 않아 8년여 만에 최소치를 기록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경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이 고용"이라고 했을 정도다.
정부가 취약계층의 소득 증가를 유도해 소비를 늘리고 이를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일자리 중심의 소득주도 성장' 기치도 그 효과에 의문 부호가 달린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을 17년 만에 최대폭인 16.4% 올려 7천530원으로 정했으나 그 부담에 따른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줄며 오히려 서민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든 것 아니냐 하는 분석도 나온다.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부동산 대책의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다주택자의 돈줄을 조이는 등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내놓으며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추진했지만 강남의 아파트 매매가는 오르고 지방의 아파트 매매가는 떨어져 부동산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았다.
일각에선 부동산 정책이 발목을 잡았던 노무현 정부 당시의 상황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 섞인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3년 만에 3%대 성장궤도에 복귀한 경제가 삶의 질을 나아지게 했음을 체감하게 하려면 섬세한 정책 보완이 필수라는 견해는 그래서 지속된다.
◇ 국민과의 소통은 합격점…국회와의 협치·인사는 사실상 '낙제'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의 첫 1년간 대국민 소통은 합격점을 줄 만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 문제를 논의한 공론화위원회, 정책과 관련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국민청원 게시판' 등은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이 반영된 결과였다.
각종 국가 행사에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문 대통령의 노력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와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국회와의 협치에서는 그리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중요 국면에서 특정 현안과 관련해서는 정쟁의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야권의 태도도 문제였지만 문 대통령이 여소야대의 지형에서 집권한 만큼 좀 더 정교하게 협치를 이행하는 데 공을 들여야 했다는 것이다.
신율 교수는 "국민청원 게시판 등으로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으나 문제 해결에 기여한 바는 거의 없었다"면서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인 국회를 건너뛰고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만 부각하려는 양상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추경예산을 비롯해 공수처 설치법 같은 핵심 법안의 미진한 처리, 나아가 정부의 주요 공약이었던 '지방선거 동시 개헌 국민투표' 실시가 무산되는 과정은 문 대통령이 치러야 할 비싼 수업료와도 같았다.
협치와 함께 인사검증 부실, 그리고 교육정책 논란도 문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요소였다.
병역 기피·부동산 투기·세금 탈루·위장전입·논문 표절 등 기존 5대 인사 원칙에 음주운전과 성 관련 범죄 전력을 포함해 검증 기준을 강화했지만 김기식 전 금감원장 후보자까지 차관급 이상 각료 후보자의 낙마는 8차례에 달했다.
논란의 인사가 있을 때마다 청와대 민정라인의 검증 부실론이 불거져 국정 운영에 부담을 안겼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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