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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고문 폭로한다"…다시 목소리 낸 5·18거리방송 주인공
차명숙씨 "잔인한 고문, 하얀 속옷이 잉크색 됐다…여성도 예외 아냐"
505보안대-상무대-교도소로 이어진 고문·가혹 행위 증언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광주시민에게 가해진 고문은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했다. 여성도 예외가 아니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치욕을 당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만행을 시민에게 알리고자 거리방송에 참여한 차명숙(58·여) 씨는 전두환 신군부 반인륜행위를 폭로하기 위해 38년 만에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차 씨는 30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980년 5월 신군부가 시민에게 자행한 고문을 세상에 고발했다.
그는 11공수여단 계엄군 병력이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를 감행한 5월 21일 병원에서 부상자를 돌보다가 기관원에게 붙잡혔다.
505보안대와 상무대 영창을 거쳐 광산경찰서, 광주교도소로 끌려다니며 갖은 가혹 행위를 당했다.
차 씨는 기자회견에서 "무릎을 꿇게 한 뒤 군홧발로 밟고 짓이겨도 신음 한 번 내지 못했고 어린 학생을 상무대 책상 위에 앉혀 물을 끼얹어 가며 어깨가 빠지도록 몽둥이로 두들겨 팼다"라고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 또한 보안대와 상무대 영창에서 받은 고문으로 인해 하얀 속옷이 까만 잉크색으로 변하도록 살이 터지고 피가 흘러나와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가혹 행위는 교도소로 이감되고 나서도 끝나지 않았다.
차 씨는 "교도관 세 명이 들어와 등 뒤로 수갑 채우고 곤봉을 끼어 양쪽에서 들고 나갔다. 이미 한 차례 고문을 받고 난 뒤였기에 2차 고문은 더더욱 두려웠고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다"라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자살을 방지한다는 명목 아래 30일 동안 징벌방에서 폭 10㎝, 두께 3㎝ 혁대를 차고 25㎝ 쇠줄에 묶인 가죽 수갑을 양쪽 손목에 찬 채 먹고 자고 볼일까지 보면서 짐승만도 못한 상태로 지내야 했다"라며 마른 울음을 삼켰다.

차 씨는 "광주교도소는 수감 기간 내가 다른 재소자에게 불온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이런 가혹 행위를 저질렀다"라며 "수감기록으로 증거가 명백하게 남은 고문을 고발함으로써 5·18 진실 찾기에 한 걸음 다가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38년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기억을 털어놓은 이유에 대해서는 "가해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차 씨는 5·18 진상규명 특별법 시행에 따라 출범할 진상규명위원회가 고문수사와 잔혹 행위도 조사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항쟁 당시 고문당한 여성들 증언을 확보해 역사적 진실로 기록해달라고 5·18 단체와 연구자에게 호소했다.
차 씨는 5·18 당시 차량에 올라 헌혈과 항쟁동참 방송을 했던 여성 가운데 한 명이다.
간첩으로 몰린 차 씨는 505보안부대로 끌려가 허위 자백을 강요받으며 고문당했다.
친척이 운영하는 사진관 일을 도우며 양재학원에 다녔던 그는 계엄포고령 위반과 내란음모 등 죄목으로 15년 형을 선고받았고 2년여 옥고를 치른 뒤 1981년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h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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