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목소리] '저녁 있는 삶' 기대…'워라밸' 꿈 부푼 대기업 직장인
"가정 충실하니 업무 효율도 늘어"…퇴근 후 자기계발 직장인도
기대감 속 "업무 자체가 줄지 않아 실질적 효과 없을 듯"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근로시간 단축 개정안이 시행되면 퇴근을 일찍 하는 대신 출근 시간을 늦추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싶어요. 영화에 나오는 다정한 부자(父子)들처럼요."
금융권 대기업에 다니는 전모(37)씨는 주 52시간 노동이 현실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묻자 "아이에게 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며 이같이 답했다.
오는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법정 근로 '주 52시간 근무 시대'가 열림에 따라 대기업 직장인들은 기대감에 부푼 표정이었다.
올해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 전씨는 "아내와 맞벌이를 하는 터라 남들보다 아이를 돌보는 데 소홀한 점은 없는지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월급이 조금 줄어든다고 해도 가족의 가치마저 포기하고 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씨는 또 "아무래도 젊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풍토가 생겨나고 있다"며 "기업 문화도 집단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개인이나 가족 중심으로 점차 바뀔 것 같다"고 기대했다.
워라밸은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의 줄임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한다.
과거 1년간 육아휴직을 경험한 바 있는 전씨는 "조금이라도 가정에 기여를 하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근로 의욕과 업무 효율도 훨씬 늘어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제조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40)씨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더 '딸바보'(딸을 각별히 아끼는 아빠)가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씨가 다니는 회사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해 이미 지난 2월부터 주 40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씨는 "퇴근 후에는 대부분 5살 딸 쌍둥이를 돌보며 시간을 보낸다"며 "딸들이 아빠를 더 잘 따르게 된 것 같아서 기쁘고 딸들에 대한 걱정이 줄어드니 일에도 더 편하게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연봉제를 적용받는 대부분 사무직 근로자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월급이 많이 줄어들지는 않는다"면서 "일과 시간 이후에 피트니스 클럽을 다닌다든지 외국어 학원에 다니는 동료들도 꽤 늘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다만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수당이 줄어드는 생산직이나 업무 특성상 근로시간 단축 효과를 별로 누리지 못하는 연구직들의 경우 불만도 있어 보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직장인 정모(32)씨 역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제도가 잘만 정착된다면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신혼인데도 늘 일에만 치여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며 "근로시간 단축으로 '칼퇴근'이 가능해진다면 아이가 생기기 전에 아내와 함께 라틴댄스를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정씨는 "사실 근로시간이 단축된다고 해도 일 자체가 줄어들지 않는 한 실질적인 단축 효과가 생기진 않을 것 같다"며 "기업들에 근로시간 단축을 자율로만 맡겨두지 말고 정부가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대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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