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D-1] 내일 판문점 열린다…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
2000·2007년 이은 세 번째…비핵화 출발점으로 냉전구도 해체 가늠자
北최고지도자 사상 첫 南땅 밟아…전환기적 남북관계 한 획 긋는 순간
관건은 비핵화·종전선언 등 핵심사안 합의 수준…북미정상회담 길잡이
5월 중순 방미 한미정상회담…김정은 결단 유도하고 트럼프 설득 과제
DMZ 비무장화·이산상봉도 논의…비핵화 대비 경협방안 사전설명할 듯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 "한반도에 따사로운 봄이 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4월 17일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기원법회 축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 만남으로 기록될 '2018 남북정상회담'이 26일을 기점으로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11년 만에 열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세계열강의 각축장이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한반도 냉전 구도 해체의 가늠자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회담이 열리는 데다, 회담 장소가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집으로 결정된 데 따라 분단 이래 최초로 북한 최고지도자가 남측 땅을 밟는다는 점에서 전환기적 남북관계의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순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 모토를 '평화, 새로운 시작'으로 규정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이라는 종착점을 향한 출발선에서 신발 끈을 바짝 조이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앞선 2000년·2007년의 두 차례 회담과 다른 점은 단순히 남북관계만을 개선하기 위한 만남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른바 한반도 이슈의 중추 의제인 비핵화를 목표 지점으로 분명히 설정한 담대한 여정의 길목이라는 의미가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하이라이트인 북미 정상 간 '담판'에 영향을 주고, 북미회담 결과가 고스란히 남북관계에 투영되는 상호순환적 메커니즘이 가동된 터라 그 '첫 매치'인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 '길잡이' 역할을 부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5차 회의에서 비핵화 목표 달성과 이를 통한 항구적 평화정착의 큰 걸음이라는 의미에서 북미정상회담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그 목표를 위해 남북정상회담이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담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을 위한 합의 수준이다.
비핵화·평화체제 문제는 남북 합의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미국이라는 '상수'가 필요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중국 등 여타 한반도 문제 관련 당사국의 관여도 상정해야 한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의 '운전자'를 자처한 문 대통령이 실제 북한과 미국을 움직여 현재의 '큰 판'을 이끌었고, 이를 위한 첫 시동이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점에서 이번 회담의 성패가 이후 열릴 북미정상회담, 나아가 한반도 운명 전체를 좌우할 정도로 파괴력을 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시선은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이 이른바 '4·27 선언'에 평화체제의 선결 조건인 종전선언과 비핵화 문제에 관해 어느 정도의 내용을 담느냐로 쏠린다.
이미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소통 창구를 다변화한 남북은 적지 않은 접촉으로 정상회담 의제를 가다듬어 초안 수준의 합의문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비핵화와 종전선언 이슈는 정상회담장의 두 정상 협의 여부에 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을 엿새 앞둔 지난 21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향후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이라는 신뢰 조치를 통해 비핵화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함으로써 한미 정상의 기대감을 키운 것이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3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북한의 핵 동결 조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중대한 결정"이라고 환영하면서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청신호"라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합의문에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두 정상의 강한 의지와 함께 종전선언을 통한 평화협정 체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남북미 또는 중국을 포함한 3∼4자 간 종전 논의를 시작한다는 문구가 담길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 되풀이됐듯이 남북 정상 간 선언이 단순한 선언에 그쳐 휴짓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 다수 당국자와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는 무엇보다도 남북정상회담 직후 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북미 정상 간 대좌가 준비돼 있어서다.
역설적으로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도 관측통들의 시각이다. 북미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에 대한 큰 틀의 합의와 더불어 세부 방법론이 오갈 개연성이 있고, 북미 간 대척점이 바로 이 부분이라는 점에서 충돌 여지가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으로 불리는 선 핵폐기·후 보상의 일괄타결 프로세스를 강조하면서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내세운 북한과 대립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바로 이 대목에서 운전자 또는 중재자로서 역할 공간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 간 공조를 토대로 한 비핵화 해법에 최대한 근접하도록 김 위원장의 결단을 유도하고, 역으로 남북정상회담 결과물을 가지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말 그대로의 '중재역'이다.
문 대통령이 남북·북미 정상회담 사이 기간인 다음 달 중순 미국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과 실무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동시에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비무장지대(DMZ)의 실질적 비무장화와 국회를 비롯한 각계 교류,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조치 처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책도 검토될 것으로 관측된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한반도 신경제 구상'과 같은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내용이 담길지도 관심이다. 물론 청와대는 남북경협 문제는 의제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문 대통령이 비핵화 이행이 급물살을 타고 국제적 대북 제재가 풀릴 경우 실행가능한 경협방안을 김 위원장에게 사전 설명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김 위원장이 판문점 북측 구역인 판문각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 MDL을 도보로 넘어 자유의집을 지나 회담장인 평화의집까지 걸어가는 짧지만 강렬한 순간은 '한반도의 봄'을 상징하는 또 다른 역사적 장면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MDL 선상 또는 공식 환영식이 열리는 자유의집 앞에서 김 위원장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만남 자체에서부터 회담 의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안을 확실하게 준비하기 위해 지난 20일 이후 6일째 외부 일정을 일절 잡지 않고 있다. 매일 같이 새벽까지 관련 문건을 검토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11년 전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때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총지휘했던 문 대통령이 10·4 선언이 사실상 물거품이 됐던 과거의 회한을 뒤로하고 평화의 봄을 실현할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시선이 한반도로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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