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땅 밟고 눈 감아야지"…남북 정상회담에 들뜬 전북 실향민
실향민 300여명 모여 사는 '이서정착농원'…기대와 우려 쏟아내
(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남북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25일 전북 완주군 정농1리 경로회관에 모인 실향민들은 가수 한정무의 노래 '꿈에 본 내 고향'을 목놓아 불렀다.
나이가 지긋한 이들은 1951년 1·4후퇴 때 황해도에서 목선이나 군함을 타고 내려와 이곳에 정착한 실향민이다.
11년 만의 정상회담 소식에 실향민들은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남북정상회담에 어떤 기대를 거는지 묻자 우후죽순 희망 어린 답변이 돌아왔다.
8살 때 아버지 손을 붙잡고 이곳에 내려왔다는 유영자(75·여)씨는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난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북한을 자유롭게 오가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린 나이였지만 황무지에 정착해 밭을 일구면서 힘들게 끼니를 이었던 그때가 잊히지 않는다"며 "지금도 어렵게 지내는 북한 동포들이 우리와 함께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북녘땅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내비쳤다.
12살 때 피난 온 배심년(79·여)씨는 "북에 두고 온 가족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린다"고 눈시울을 붉히며 "얼른 이산가족상봉이 이뤄져야 가족도 만나고, 죽기 전에 고향 땅 한 번 밟아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수십 년 전 생이별을 했던 가족 생사를 알 길이 없어 가슴을 치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곳 '이서정착농원'에 터를 잡은 이들은 대부분 황해도 출신으로, 부모를 따라 남한 땅을 밟은 실향민 1.5세대들이다.
현재 300여명이 거주하고 있고, 실향민 1세대는 모두 유명을 달리했다.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 한편에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실향민 김성호(83)씨는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은 바람직하지만, 그동안 거짓말만 해왔던 북한 정권이 어떤 속내를 가졌는지 알 길이 없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어 "이산가족상봉이 이뤄진다고 해도 남한에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에 사는 혈육들이 피해를 볼까 무섭다"며 "이산가족상봉 신청하는 것조차 꺼려진다"고 털어놨다.
갖가지 기대와 우려를 쏟아낸 이들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는 오는 27일 한자리에 모여 역사적인 순간을 TV로 지켜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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