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남북정상회담 앞둔 북중접경 中단둥 기대감·관망 엇갈려
"北개방시 '제2의 선전시' 가능" vs "아무 것도 안 풀리고 당국 대화 뿐"
중국측 대교 개통 대비 착실…홍보전광판은 '시진핑·김정은 회담' 방영
(단둥<중국 랴오닝성>=연합뉴스) 홍창진 특파원 = "한국·조선(북한)의 최고 지도자들이 만나 회담을 열다니 얼마 전까지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두 사람이 좋은 결과를 내어 접경에도 순풍을 가져오기를 바랍니다."
역사적인 '2018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중접경인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의 주민, 무역상들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지역에 드리워진 불황의 그림자가 속히 걷히기를 기원했다.
최근 수년간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제재가 거듭되고 중국이 제재에 참여하면서 단둥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북한 신의주와 압록강을 사이에 둔 지리적 이점 덕분에 양국 교역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북중교역 거점'으로 통했으나 제재에 따른 후폭풍이 단둥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단둥 지역민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말 전격 방중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회담하고, 지난 20일에는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중단을 표명한 데 이어 오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한다는 소식에 지역의 어려움을 반전시킬 한가닥 희망이 생겼다고 반색했다.
24일 오후 단둥 압록강변 공원.
공원에서 만난 시민 류(劉)모(46) 씨는 "작년 11월 조선에 대한 석유제품 공급이 전면 중단됐고 조선산 철광석, 석탄, 납 등의 수입도 끊겨 무역업자들이 먹고살 방도가 없어졌다"며 "심지어 '(중국) 정부가 단둥을 버렸다'는 푸념이 나올 만큼 민심이 흉흉했는데 남북 지도자들이 만나 비핵화 논의를 진전시키면 단둥도 살아날 방도가 생길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출했다.
이날 영상 21도의 낮 기온에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면서 압록강변 공원엔 가족, 친구 단위의 단둥시민과 외지 관광객이 뒤섞여 성큼 다가온 봄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강력한 대북제재 이전 압록강대교를 통해 단둥과 신의주를 오가는 화물차와 대형 트럭이 몰리던 단둥해관(세관) 앞 도로는 시내버스와 택시를 제외하면 오가는 차량이 별로 없는 편이었다.
대형트럭 수백대가 진입할 수 있는 해관 주차장은 비어있고 북한을 방문하려고 해관 사무소를 찾는 무역상의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해관 앞 도로를 지나던 타오(桃)모(33) 씨는 "조선이 핵실험을 중단하고 경제발전에 힘쓰기로 했다는 것은 매우 좋은 소식"이라며 "저 압록강 너머 신의주가 개방되고 경제교류가 활성화되면 단둥도 경제특구 선전(深천<土+川>)처럼 발전할지 누가 알겠느냐"고 되물었다.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1990년대부터 대북 봉쇄정책을 구사하면서 바다를 통한 북한의 대외교류는 막혔다. 육로를 통한 중국경제 의존도는 기형적으로 높아졌다.
단둥 경제도 대북 무역과 북한 인력을 활용한 임가공무역 등에 종사하는 이가 급증했으나 북한 핵실험에 대응한 안보리의 초강력 대북제재 시행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특히 북한 핵개발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것에 놀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압박을 가하면서 이 같은 상황이 더욱 심화했다.
중국은 작년 8월 유엔 안보리를 통과한 대북제재 결의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같은 해 9월 초부터 북한 석탄 수입을 전면 금지했고, 지난 1월엔 자국 내 북한이 설립한 기업에 폐쇄명령을 내리는 등 압박 강도를 높였다.
이에 따라 북한과 연계해 사업을 벌이던 중국인 사업가들은 금융거래상 대북거래의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북한 노동자의 값싼 인건비를 활용해온 업체와 공장은 대체인력 마련에 고심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더구나 북한 핵·미사일 개발 연루 혐의로 조사를 받은 단둥 랴오닝훙샹(遼寧鴻祥)그룹 마샤오훙(馬曉紅·48·여) 전 대표가 구속됐고, 단둥의 북한전문여행사 동사장 겸 총경리가 공안에 구속되는 등 실업계 분위기가 얼어붙기도 했다.
압록강변 중롄(中聯)호텔에서 만난 중국인 사업가 양(楊)모(56) 씨는 "국제사회 제재로 조선이 어려움에 부닥치면서 단둥의 철강, 광업, 관광업이 타격을 입었으나 한조(韓朝·한국과 북한)정상회담에 이어 미조(美朝·미국과 북한)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에 눈치빠른 사람들은 관련 무역물품 확보에 나섰다는 이야기가 나돈다"고 귀띔했다.
단둥 시내 압록강변의 중국측 섬인 웨량다오(月亮島)에 들어선 복합 리조트 단지의 홍보용 전광판은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의 회담 및 만찬 장면을 방영하면서 경협 재개에 대한 바람을 내비쳤다.
한때 북중 경협 상징으로 꼽혔으나 3년 6개월째 개통이 미뤄진 신압록강대교를 찾았다.
북한쪽 접속도로 교량 미건설로 개통이 지연됐으나 중국 측은 세관·검역·출입국관리시설 등 새 통상구 시설공사를 착실히 진행해 개통에 대비한 상태였다.
단둥 현지에서 희망적인 관측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대북무역에 오래 종사한 한국인 기업인은 "남북정상회담이 성공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지만 아직 실질적으로 나아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당국간 대화에만 집중하는 분위기라서 회담이 끝나도 올 연말은 돼야 가시적인 조치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신중론을 폈다.
또다른 대북무역 종사자는 "아무래도 경제교류나 경제협력보다는 남북간 인도주의적 지원이 먼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후 미국의 대북제재가 풀려야 경제교류가 가능해 당분간은 관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이후 지난 수년간 냉각됐던 북중관계가 다소 완화되는 조짐도 포착됐다.
압록강대교(중국명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 부근 교통섬에 상시 정차돼 관광객들을 위압하던 검은색 특수경찰 장갑차가 최근 모습을 감춘 것이다. 또 작년 7월 북한 ICBM 발사 직후 압록강변 공원 입구에 배치됐던 무장경찰 대형 트럭도 없어졌다.
중국 당국 명령으로 지난 1월 문을 닫은 단둥의 최대 규모 북한식당인 류경식당이 중국인 업주 명의로 바꾸고 석달여 만에 영업을 재개했다.
점심시간을 맞아 연합뉴스 기자가 류경식당을 찾았으나 입구에서 손님을 맞는 북한 여종업원은 "자리가 없다"며 문전박대했다. '언제부터 영업을 재개했느냐'는 질문에 "계속 영업했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며 시치미를 뗐다.
무역회사 직원인 단둥 시민 장(張)모(36) 씨는 "지난해 북한의 6차 핵실험을 전후해 유엔 안보리가 4차례나 대북제재 결의를 시행하면서 대북 무역액이 급감하고 묻 닫는 회사가 속출하는 등 단둥 시민의 피해의식이 크다"며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이 같은 압박이 풀려 경협이 재개되기는 바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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