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 배상"…'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모의법정
'시민평화법정' 이틀간 열려…'재판장' 김영란 "대한민국 책임 인정"
(서울=연합뉴스) 최평천 기자 = "피고인 대한민국은 원고들에게 국가배상법이 정한 배상기준에 따른 배상금을 지급하고, 원고들의 존엄과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책임을 공식 인정하라."
22일 오후 1시께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모의법정인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서 재판장인 김영란 전 대법관은 이같이 선고하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시민법정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한국군으로부터 상해를 입은 베트남인 2명이 원고가 돼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종의 모의 법정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베트남평화의료연대, 국회시민정치포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이 주최한 시민법정은 김 전 대법관, 이석태 변호사,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재판부를 맡았다.
김 전 대법관은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이 파견된 동안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살인 등 불법행위가 일어났는지에 대해 대한민국이 진상을 규명할 것을 권고한다"며 "전쟁기념관 등을 포함해 베트남 참전을 홍보하는 모든 공공시설에 불법행위를 했다는 사실과 진상조사 결과도 함께 전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전쟁에도 보호받아야 할 민간인으로 인정되며, 증인들의 진술도 신빙성이 있다"며 "100여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미뤄 이 사건이 전쟁 중 일어난 의도치 않은 희생으로도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전날 10시부터 9시간가량 진행된 변론에서는 베트남 꽝남성 퐁니 마을 출신인 응우옌티탄(58·여)과 하미 마을의 응우옌티탄(60·여)이 직접 참석해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증언했다.
이날 최후진술에 나선 퐁니 마을 출신 응우옌티탄씨는 "한국 참전군인들은 마을 주민 74명을 학살했다. 저와 같은 생존자들은 힘든 삶을 살아왔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미 마을의 응우옌티탄씨도 "전쟁 때문에 부모님을 잃었다"며 "생존자들에게 배상을 해주고, 학살 사실을 한국 정부가 시인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원고 대리인인 김남주 변호사는 최종변론에서 "당시 작전 지도를 보면 한국군이 학살을 자행했던 마을 인근에 있었다"면서 "한국 정부는 학살 사건에 대한 수사와 기소할 의무도 위반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피고 대한민국 측 대리인은 학살의 가해자가 한국군이라는 증거가 부족하고, 설사 사건이 있더라도 퐁니 주민들은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많은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보호 의무가 있는 민간인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피고 측 박진석 변호사는 "32만명의 참전 한국군을 묶어서 학살 가해자라고 하는 것은 대다수의 참전군인에게 억울한 일"이라며 "가해자를 한국군이라고 하지 말고 정확히 어디 부대인지 밝혀야 한다"고 변론했다.
시민법정에는 300여명의 시민이 참석해 4시간가량 진행된 모의법정을 끝까지 지켜봤다. 선고가 내려지자 참석자 대다수가 박수를 치며 환영했고, 원고인 퐁니 마을 응우옌티탄씨는 울먹이며 "너무 기쁘다. 만족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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