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2008?"…삼성, '경영쇄신 10년' 맞아 내부 자성론
총수 일가 퇴진·차명계좌 처리·지주회사 전환 등 "돌고돌아 제자리"
"2008년식 쇄신 되풀이 안된다…대증요법 아닌 장기 신뢰회복 추진"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기자 = "10년 전 완전히 거듭나겠다고 선언했지만 돌고돌아 제자리 아닙니까. 그런 식의 대증요법은 더이상 안됩니다"
2008년 불법 비자금 조성, 편법 경영권 승계 등의 의혹으로 특검 수사를 받고서 고강도 경영쇄신안을 내놓은 지 22일로 꼭 10년을 맞은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이 내놓은 '자성론'이다.
당시 경영쇄신안은 그룹 전반에 대한 '대수술'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10년이 지난 현재 외견상 사실상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탄식인 셈이다.
삼성은 2008년 4월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건희 회장의 퇴진, 부인 홍라희 씨의 리움미술관장직 사퇴, 아들 이재용 당시 전무의 고객총괄책임자(CCO) 직책 사임 등 총수 일가의 거취 표명을 비롯해 10개 항의 쇄신안을 내놨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전략기획실 해체, 이 회장의 차명계좌 실명 전환 후 사회사업 활용, 지주회사 전환의 장기 과제 추진 등도 포함됐다.
그러나 이후 총수 일가는 모두 복귀했고, 전략기획실도 미래전략실로 이름만 바꾼 채 부활했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고, 지주회사 전환도 아직 숙제로 남은 상태다.
지난해 홍 전 관장이 다시 자리에서 물러나고 미전실도 폐지됐으나 이는 '국정농단 게이트'에 연루된 데 따른 것이었다.
이처럼 최근 내부적으로 '2008년 쇄신안 이후 10년'에 대한 자조적인 인식이 확산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중장기 신뢰회복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게 복수의 삼성 관계자들 전언이다.
창업주 이병철 선대회장이 1983년 '2·8 선언'을 통해 본격적인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향후 50년, 100년을 내다봤듯이 장기적 안목을 갖고 삼성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자는 취지다.
이재용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을 때 그룹 안팎에서 획기적인 경영쇄신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별다른 발표가 없었던 것도 이런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임원은 "최근 검찰수사와 비판여론이 이어지는 영향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이벤트성 쇄신안을 내놓을 경우 '어게인 2008'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면서 "서두르지 않고 기본부터 새로 다져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삼성에서 12년간 홍보업무를 맡은 이인용 사장이 지난해 말 인사에서 사회봉사단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 "글로벌 사회에서 '삼성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뚜렷하게 떠오르는 게 없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면서 "앞으로 글로벌 기업시민으로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뜻을 담아 어떻게 더 사회에 공헌할지 깊이 고민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 사장은 최근 사회봉사활동 계획에 대해서도 "획기적인 것을 새롭게 발굴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다"면서 "이제는 가치가 이끄는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임원들에게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계열사 고위 관계자는 "삼성전자 등이 지난 10년간 이뤄냈던 기술혁신 수준으로 가치경영을 했더라면 최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물론 외부 요인도 있지만 이것만 탓할 게 아니라 차제에 스스로 반성하고 거듭나야 진정한 대표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게 내부의 공통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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