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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시민군 폭약관리반, 문용동 전도사 행적 재조명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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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시민군 폭약관리반, 문용동 전도사 행적 재조명 움직임
유족 "그는 프락치가 아니라 광주 구한 의인"…5·18기록관에 유품 기증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폭약관리반에 참여했던 고(故) 문용동 전도사의 유품과 행적을 담은 기록물이 항쟁 38년 만에 공개됐다.
유품과 기록물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맡긴 유족과 기념사업회는 시민군 일원임에도 군 전문가와 함께 폭약 뇌관을 제거한 문 전도사가 광주를 지켜낸 숨은 의인이라며 역사 재평가를 촉구했다.
문용동 전도사 순교기념사업회는 고인이 작성한 수첩과 일기 등 문서자료 24점, 사진 75매, 가방 등 유품 3점을 5·18기록관에 전달하고 기록물위탁관리협약을 맺었다.
기록물은 5·18 당시 27세 나이로 사망한 문 전도사가 1969년 3월 22일부터 1980년 5월 22일까지 쓴 일기장 6권 등 시민군으로 항쟁에 참여해 남겼던 수기도 일부 포함됐다.
문 전도사는 5·18 항쟁 기간 전남도청 지하에 구축한 시민군 무기고를 지키다가 계엄군이 광주 시내로 재진입한 5월 27일 공수부대원 총탄에 맞아 숨을 거뒀다.
전두환 신군부는 항쟁 직후 펴낸 '광주사태 진상조사 보고'에서 문 전도사를 군이 매수한 부화뇌동자로 지칭했다.
기념사업회는 이 일로 문 전도사가 계엄군 프락치(끄나풀)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고 설명했다.
시민군과 프락치라는 간극 사이 문 전도사의 행적은 '시민군 폭약관리반'에서 출발한다.

문 전도사는 폭발물을 다뤘던 군 복무 경험을 토대로 1980년 5월 23일 시민군 폭약관리반에 참여했다.
폭약관리반은 전남도청 앞 계엄군 집단발포가 있었던 5월 21일 이후 시민들이 화순탄광에서 가져온 다이너마이트 등 폭발물을 관리했다.
문 전도사는 당시 도청 지하에 모아둔 폭발물이 한꺼번에 터질 경우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해체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쟁 당시 광주에 주둔한 전투교육사령부에서 전도사로 시무했던 그는 비밀리에 계엄사와 접촉, 군 전문가를 데리고 폭약 뭉치 뇌관과 수류탄 신관을 제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념사업회와 유족은 광주와 시민을 구하고자 이러한 결단을 내린 문 전도사가 도청 진압작전 합리화에 나선 신군부에 의해 프락치로 매도당했다고 호소했다.
고인과 함께 시민군 폭약관리반에 참여한 김영복 씨는 기록물위탁관리 협약식에서 "문 전도사는 순교자"라며 "38년이 지났지만 이제라도 명예회복을 했으면 좋겠다.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부끄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5·18기록관은 문 전도사 기록물을 다음 달 5·18 38주년 기획전시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h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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