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CEO 리스크에 발목 잡힌 금융개혁
(서울=연합뉴스) 참여연대 출신의 개혁 성향 정치인으로 발탁된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보름 만에 낙마했다. 피감기관이 후원한 해외 출장 논란에 선관위의 '5천만 원 셀프 후원금' 위법 판단이 발목을 잡았다. 최흥식 전 금감원장에 이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발탁된 비관료 출신 금융기구 수장이 연거푸 도중 하차했다. 1999년 금감원 출범 이후 지난 정부 때까지 임명된 원장 10명은 모두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 등의 관료 출신이었다. 과거 정부들과 달리 문재인 정부가 비관료 출신을 금융감독기구 수장으로 중용한 것은 금융 분야의 파격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력한 개혁 의지를 실천에 옮기기도 전에 모두 조기 강판당함으로써 오히려 금융개혁이 표류할 위기에 처하게 됐다.
'김기식 사태'는 개혁을 두려워하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서 비롯됐다는 항변도 있지만, 금융감독기구의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를 초래한 것은 무엇보다도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인사·검증 라인의 실책이라는 점을 청와대는 겸허하게 수용하고 자성해야 한다. 외유성 해외 출장 논란이 처음 불거졌을 때 청와대는 "적법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했고, 19, 20대 국회의원의 출장 사례를 공개하며 과거 국회의원들의 '관행'에 기대려 했다. 하지만 여론은 이 문제를 법적 시비의 사안으로 보지 않았다. 국회의원 시절 '부정청탁금지법' 제정을 주도했고, 공직 윤리를 누구보다 강조했던 개혁파 정치인의 '내로남불'로 보이는 행태에 여론은 실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 초 참모들에게 선물한 액자의 '춘풍추상'(春風秋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같이 부드럽게 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해야 한다는 뜻) 경구를 스스로 실천하지 못한 데 따른 이반이었다.
이번 사태 와중에 문 대통령은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줘야 한다는 욕심이 생기지만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며 개혁 인사에 따르는 고민을 피력한 바 있다. "논란을 피하는 무난한 선택"을 하기보다는 개혁을 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되는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하지만 김기식 낙마 파동을 통해 개혁 주체일수록 더욱 강한 도덕성이 요구된다는 점을 교훈으로 얻어야 한다. 지난 정부에 비해 문재인 정부 리더십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장하성 정책실장-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김기식 금감원장' 개혁 트로이카 체제의 한 축이 무너졌지만, 금융개혁과 사회경제적 개혁의 입지까지 허물어진 것은 아니다. 금융개혁의 대의는 진영을 불문하고 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된 과제이다. 금감원은 당장 눈앞에 채용비리 의혹 정리나 삼성증권 배당 사고 처리, 한국 GM을 비롯한 기업구조조정 등의 현안이 있고, 장기 과제로 각종 제도개혁과 금융당국의 감독 체계 및 역할 재편에 대한 그림도 그려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금융개혁이 소득 불균형 해소와 성장 촉진에 도움이 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김기식 퇴진이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금융개혁 동력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청와대는 인재 풀을 넓혀 개혁 의지도 있고 국민 눈높이에도 맞는 후보를 찾아 금감원 CEO 공백을 하루빨리 메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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