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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앞에서 흘린 추모의 눈물 "이별이 아닌 다짐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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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앞에서 흘린 추모의 눈물 "이별이 아닌 다짐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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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앞에서 흘린 추모의 눈물 "이별이 아닌 다짐의 자리"
직립공사 한창인 목포신항에 추모객 발길 이어져
세월호 유가족 "영결식이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


(목포=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4년 전 오늘, 단원고 학생들은 다음 날 떠날 제주도 수학여행 짐을 싸며 설?을 것이다.
권혁규 군의 가족은 제주 이삿짐을 싸느라 분주했을 것이다.
4년 후 15일, 세월호 참사 4주기를 하루 앞두고 단원고 학생들을 떠나보내고 혁규 등 미수습자들을 되찾지 못한 원망과 아픔이 세월호가 거치 된 목포신항에 넘쳤다.
오는 5월 말로 예정된 세월호를 바로 세우는 일의 사전 작업이 한창인 목포신항에서는 추모객의 발길이 온종일 이어졌다.
추모객들은 목포신항 북문 출입구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좌현을 바닥에 대고 누워 바로 세워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세월호 현장으로 향했다.
손대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거대하고 낯선 모습으로 누워있는 세월호를 보며 추모객들은 고개를 숙이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4년 전 그날을 각자의 기억에서 꺼냈다.
안민희(37·여) 씨는 자신의 생일을 맞아 남편, 세 자녀와 함께 나선 가족여행 목적지로 진도를 선택했다.
팽목항을 가보고 싶다는 초등학교 4학년 장남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가는 길에 세월호가 거치 된 목포 신항을 들른 가족은 말없이 조용히 세월호를 먼발치에서 멍하니 바라만 봤다.
"무섭다. 슬프다"는 아들을 토닥거리며 안씨는 "먹먹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며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마을을 헤아릴 길 없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박한기(45)씨는 지난해에 이어 자녀 셋과 함께 두 번째로 목포신항을 찾았다.
중학교 3학년인 큰아들이 "저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4주기를 맞아 다시 가보자고해서 박씨는 먼 길을 달려왔다.
큰아들인 박성목(16)군은 노란 리본이 나부끼는 목포신항 철책 바깥에서 세월호를 보고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묵묵히 보듬어주며 마음껏 울게 했다.
박군의 두 동생도 오빠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
박군은 "형과 누나들이 수학여행을 떠나며 부모님께 잘 다녀오겠다 했을 테지만 돌아오지 못했다"며 "부디 하늘에서라도 지상에서 못 이룬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고 추모했다.

이날 오후 목포신항에서는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추모객 약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을 다짐하는 추모대회가 열렸다.
무대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발언이 하나하나 이어질 때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고개를 떨구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추모대회 마지막에는 아이들이 입지 못한 구명조끼를 꺼내 입고 희망의 솟대를 세우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추모대회에서 '예은 아빠' 유경근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4주기를 합동 영결식으로 치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세월호 참사는 다 해결이 됐나보다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앞섰다"며 "영결식은 영원히 이별의 의식이 아니라 다시 다짐하고 결단하는 영결식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4·16참사특별위원회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중심을 잡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며 "세월호 참사 검찰 특별수사팀과 특별 감사팀을 꾸려 적극적으로 공조해달라"고 요구했다.


pch80@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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