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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하지만 아름답기도 한 인간 세상…소설 '스페이스 보이'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출간…박형근 작가 "통찰 있는 소설 쓰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제14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박형근 작가의 장편소설 '스페이스 보이'(나무옆의자)가 출간됐다.
이 소설은 현실이 싫다는 이유로 지구를 떠나 우주 체험을 하고 온 '우주인' 김신이 우주정거장에서 외계인의 안내로 자신의 머릿속 기억을 탐험하고 다시 지구로 돌아와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 약간의 SF 판타지 요소를 품고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경박한 현실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한 지점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모습을 하고 김신 앞에 나타난 외계인은 고도로 문명이 발달한 외계인들의 존재를 지구인들에게 감추기 위해 김신에게 우주의 진실이 아닌 자신의 두뇌 속을 탐험하게 한다. 그리고 외계인의 존재에 관한 부분을 포함해 과거에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으면 그 부분을 싹 지워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김신은 첫사랑 혜주와의 기억을 간직하겠다고 고집하고, 대신 외계인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기로 약속한다. 그 대가로 외계인은 김신에게 뛰어난 통찰력과 예지력을 준다.
그렇게 2주 만에 김신은 지구로 돌아오는데,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취재진의 사진 플래시 세례를 받는 등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기자회견에서는 대중이 감탄할 만한 재치있는 말들을 쏟아내 더 인기를 끈다. 유명 인사가 된 그에게 연예기획사들이 접근하고, 업계의 전문가인 최 실장은 본격적으로 김신을 연예인으로 다듬는다. 인터뷰 멘트 대본을 만들어주고 대필 작가를 고용해 자기계발서를 쓰게 한다. 또 혼자 사는 모습을 관찰하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하는데, 소속사가 마련한 가짜 집에서 진짜로 사는 척 연기하면서 괴짜, 허당인 모습을 적절히 보여주게 한다. 잘 조련된 애완견을 투입하는 등 교묘한 연출로 대중의 호감을 사게 한다. 대중은 그에게 점점 더 열광하고 온갖 광고 촬영 수입이 따라온다.
그러나 그가 이런 스타가 된 진짜 목적인 첫사랑 혜주는 돌아오지 않고, 연예인 생활에 신물이 난 김신은 자포자기 상태에서 외계인과의 약속을 어기고 만다.
이 소설은 전반부의 기억 이야기와 후반부의 현실 풍자 사이에서 진폭이 큰 편이어서 독자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답게 간직된 과거의 추억과 추하고 천박한 현실의 시공간을 두루 여행한 끝에 자연스럽게 다다른 결론은 삶의 진실 한 조각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독자에게 위안을 준다.
"세속적인 건 아름다운 거예요.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건 바보짓이죠." (228쪽)



4일 인사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 박형근은 "예전부터 기억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2016년도 말 몸이 좀 아프고 난 뒤에 일찍 일어나고 술·담배도 안 하는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쓰게 된 소설"이라고 밝혔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그는 "우연히 들어가게 된 것이고 딱히 소설가를 꿈꾼 적은 없었다. 어릴 때는 그저 기타를 잘 치고 싶었다. 소설을 별로 읽지도 않았고, 소설을 쓰는 사람이 꼭 소설을 많이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쿨'하게 답했다.
그러면서 "살면서 떠오르는 것들 중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봤을 때 그것을 보여주고 공감하기 위해 소설을 쓰려고 한다. 시인이 되려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봐야 한다는 시인 랭보의 '견자론'을 믿는다. 그게 내가 소설을 쓰는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또 "소설이나 문학쪽 트렌드는 잘 모르겠고, 사회문화적인 트렌드에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청춘, 기억, 인터넷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서 플롯으로 갖고 있었는데, 인터넷 이야기는 첫 소설인 '20세기 소년'으로, 기억에 관한 이야기는 두 번째인 이 소설로 썼다. 이제 청춘만 쓰면 된다. 소재의 풍부함 없이는 별로 더 쓰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2011년 첫 작품인 '20세기 소년'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제5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을 받기도 했다.
소설을 쓸 때 어려움으로는 "읽기 쉬운 간결하고 빠른 문체를 만들기 위해 상당히 집착하는 편이다. 처음엔 영·미 소설처럼 라임을 맞추는 시도를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그만뒀고 가능하면 미니멀하게 문장을 깎으려고 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답했다.
그는 자신이 전공한 문예창작과 교육 방식에 관해 쓴소리도 했다.
"글을 써갖고 와서 함께 보며 비판하는 형식의 수업이나 중간고사로 단편을 두 개씩 내야 하는 등의 방식이 솔직히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저는 소설을 쓰기 위해 글쓰기를 그렇게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소설은 예술 장르 중에 기술이 필요 없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영감 자체가 텍스트이고 그걸 쓰면 되니까요. 그래서 현상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나 관찰력을 기르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글쓰기 기술보다 풍부한 소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친구와 함께 인터넷으로 옷을 파는 일을 하기도 했다는 그는 "원하는 수준으로 돈을 벌 수 없으니 소설 쓰기를 업으로 삼을 수는 없다"며 "다시 옷 파는 일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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