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폭로' 유엔 직원 "최고위 간부가 승진미끼 회유"
CNN 인터뷰서 "근거없다"는 UN기구 조사결과엔 "심각한 결함" 주장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유엔 소속의 한 여직원을 성폭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유엔 최고위급 간부가 그 의혹을 덮으려고 피해자를 회유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 직원 마르티나 브로스트롬은 30일(현지시간) CNN과 인터뷰에서 그 조직이 자신의 신고를 진지하게 수용하지 않았고 그 최고위급 간부와 가까운 인사가 자신을 회유했다고 밝혔다.
브로스트롬은 루이즈 루레스 UNAIDS 사무차장보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폭로한 인물로, 공개적 발언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루레스 사무차장보와 가까운 미셸 시디베 UNAIDS 사무총장이 출장 중 자신에게 신고를 취소하라고 압박하면서 루레스의 사과를 받아주면 승진시켜주겠다고 회유했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했다는 브로스트롬은 2015년 5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가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루레스 사무차장보가 자신에게 키스하고 몸을 더듬더니 자신을 끌고 방으로 데려가려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 일이 벌어진 직후 그 조직에 정식으로 신고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선 그 신고가 묵살당하거나 보복을 당할까 봐 두려워서였다고 설명했다.
또 서면으로 정식 신고한 것은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약 1년6개월이 지난 때이지만, 이전에 시디베 사무총장에게 비공식적으로 이러한 내용을 털어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디베 사무총장은 브로스트롬으로부터 성폭행에 관한 얘기를 사전에 들은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유엔은 14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그의 성폭행 의혹에 "근거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브로스트롬은 내사 자체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나한테 일어난 일이나 그 상황이 어떻게 잘못 처리됐는지를 다른 여성이 겪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와 관련, 유엔의 전·현직 관계자들은 유엔이 직원 보호의 의무보다는 평판을 우선시한다며 유엔의 대응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유엔의 성폭력 대응 방식에 변화를 촉구하는 단체 '코드 블루'의 폴라 도너번은 '이익 충돌'을 언급하며 "유엔이 스스로 감시 역할을 해선 안 되며 외부의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기관"이 이를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시디베 사무총장이 조사를 담당하는 점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전직 유엔아동기금(UNICEF) 직원인 스티븐 루이스는 시디베 총장이 현재 지위를 발판삼아 조국인 말리의 대통령이나 세계보건기구(WHO) 수장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한다며 그런 사람이 증인이자 판사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에이즈 퇴치를 "소명"으로 여기고 일했다는 브로스트롬은 "내 꿈의 직업이 악몽이 됐다"며 "그 일을 공개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대화하지 않는 동료는 물론 내게 등을 돌린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CNN은 브로스트롬 외에도 루레스 사무차장보에게서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한 직원들이 더 있다고 전했다.
우간다와 케냐에서 UNAIDS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말라야 하퍼는 브로스트롬의 폭로를 듣고 놀라 의자에서 넘어질 뻔했다며 브로스트롬보다 1년 먼저 거의 동일한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여전히 유엔에서 일하는,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여성도 비슷한 사례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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