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지데몬의 운명은… 스페인도, 독일도, EU도 시험대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 덴마크 경찰은 카를레스 푸지데몬 전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을 안 잡은 걸까, 못 잡은 걸까.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추진을 주도하다가 반역, 선동, 공공재 횡령 혐의로 수배되자 국외로 도피 중이던 그를 붙잡는 건 결국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州)에 배치된 독일 연방경찰의 몫이었다. 지난 25일 오전(현지시간) 덴마크에서 독일로 이어지는 A7 고속도로에서다.
푸지데몬은 덴마크를 거쳐 은신이 편한 벨기에로 이동하려고 이곳을 경유하던 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에른스트 발터 독일연방경찰조합 대표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자기들은 유럽연합(EU)이 규율하는 회원국 의무를 다해 유럽체포영장이 발부된 그의 신병을 확보했다면서 "덴마크 경찰은 유럽의 연대 속에서 독일 경찰과 똑같이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푸지데몬이 먼저 그 나라를 지나왔건만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느냐는 에두른 비판으로 비쳤다.
EU는 지난 2004년 회원국 간 범죄인의 신속한 인도 등을 위해 각국 모든 경찰과 사법관리들에게 체포영장 발부 대상자의 신병 확보를 사실상 의무로 부과했다.
그러나 독일 경찰의 이번 의무 이행은 스페인 중앙정부가 반란자로 낙인 찍은 그의 신병 처리를 두고 독일 측에 깊은 시름을 안겼을 뿐 아니라 스페인, 나아가 EU를 정치적, 외교적 시험무대에 올려놨다.
이는 주로, 푸지데몬이 정치적으로 휘발성이 지대한 스페인 내 독립 이슈에 얽힌 주요 정치인이라는 것과 연결된다.
그 점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우선, 푸지데몬을 추후 스페인으로 넘길지, 말지 결정하는 주체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州) 고등법원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주 고법은 푸지데몬의 반역, 선동, 공공재 횡령 혐의가 독일에서도 형사적 문제가 되는 것인지를 가려내고 60일 안에 송환 여부를 판단하게 돼 있다.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30일간 연장이 가능하지만, 그리되진 않을 거라는 관측이 지금은 우세하다.
당장 이를 두고 민감하기 그지없는 연방 차원의 외교 사안을 주 법원에만 맡겨 둘 수 있느냐 하는 비평이 따른다.
연방하원의 디트마어 바르취 좌파당 원내대표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한 법원이 카탈루냐의 미래에 관해 공동결정을 해야 한다는 건 웃기는 이야기"라며 외교위원회 긴급 소집을 요구했다고 시사 주간 디차이트가 보도했다.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독일 사법당국이 푸지데몬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그의 범죄인 인도 문제는 연방 헌법재판소로 갈 수도 있다"고 짚었다. 주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더라도 그가 연방 헌재에 항소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을 둔 추정이다.
제2 공영 ZDF TV는 아예 두 가지 시나리오를 대별했다. 첫째는 모든 혐의가 인정된 채 송환돼 길게는 30년형이 떨어질 개연성이다. 둘째는 단지 경미한 횡령 혐의만 인정돼 송환되지 않을 가능성이다.
두 번째 추론은 뚜렷한 근거가 있다. 독일 형법에는 반역죄가 없다는 거다. 스페인 당국이 추궁하는 반역 혐의가 독일에서는 문제 안 된다는 의미다. ZDF는 독일 형법 81조가 "연방에 맞선 내란(대반역)"을 규정하고 있지만 성격이 다를 뿐 아니라 폭력과 협박이 동반돼야 내란죄도 성립된다고 전했다. ZDF는 또 푸지데몬은 비폭력 투쟁을 했다고 많은 사람이 말한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애초 유럽체포영장 집행 대상 범죄 32가지에 푸지데몬 케이스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32가지는 사이버범죄, 테러리즘, 인종주의, 사기, 돈세탁, 살해 모의, 중대한 신체위해, 마약거래처럼 익숙한 것들이다.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아울러 형사 부문의 국제권리 구제를 다룬 법률 2장 6조를 인용해 정치범죄로 인한 범죄인 인도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요지의 한 전문가 기고문을 게재했다.
한편, 푸지데몬은 노이뮌스터에 있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지방법원의 26일 판결에 따라 구금이 지속되며, 그 상태에서 범죄인 인도 절차를 겪게 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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