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필 '압축 성장' 시킨 즈베던 "교향악단은 카멜레온 같아야"
뉴욕필 음악감독 지명자…22·24일 경기필 객원 지휘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단원들 역시 프로라서 제가 조금만 소홀하면 금방 다 압니다. 진심으로 존경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솔선수범해야죠."
악단의 연주 역량을 단기간 내 끌어올리는 능력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출신 지휘자 얍 판 즈베던(58)의 '비결'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는 특히 2012년부터 '클래식계 변방'에 위치했던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악단의 비약적 발전을 이뤄낸 것으로 주목받았다. 이 같은 성과가 미국을 대표하는 뉴욕필하모닉의 '러브콜'로 이어져 2018~2019 시즌 공식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
경기필하모닉 객원 지휘를 위해 한국을 찾은 즈베던은 2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케스트라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레퍼토리를 광범위하게 다뤄보는 것"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그는 "오케스트라가 '카멜레온' 같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모든 음악을 시도하고 소화해야 오케스트라가 성장합니다. 예를 들면 바흐를 잘 연주하게 되는 것은 분명 현대곡 소화 능력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줍니다. 음악의 본질은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거든요. 한식을 잘 요리하면 양식도 잘하는 법이죠."
홍콩필하모닉은 이러한 그의 신념 아래 1957년 창단 이후 최초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전막 연주를 시도했고, 지난 1월 성공적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같은 '압축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 즈베던은 단원들에게 많은 연습을 요구하고 리허설 때도 엄격한 편이다. 바이올린의 짧은 한 악구 연습을 위해 10번 이상 반복 연습시키기도 하고 목관 파트의 아주 작은 부분을 위해 리허설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하기도 한다.
그는 이런 카리스마를 획득하기 위해 "매일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하고 충분한 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무엇보다 내 삶 자체를 음악에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지휘자의 모습이 솔선수범이 돼야 하죠."
즈베던은 지휘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하기 전 바이올리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7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16살 때 뉴욕으로 건너와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수학한 그는 네덜란드의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의 최연소(19세) 악장을 지냈다.
이런 그에게 지휘자라는 새 길을 열어준 사람이 미국 명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이다. 1990년 RCO의 독일 베를린 공연 지휘를 맡았던 번스타인은 리허설 때 객석에 앉아 연주를 듣고 싶다며 즉흥적으로 그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그는 "음표 하나 지휘해본 적이 없다"며 사양했지만 번스타인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말러 교향곡 1번 일부분을 지휘했다. 번스타인은 지휘를 마친 그에게 "(연주는) 안 좋았어. 그런데 내 보기엔 뭔가가 있는 것 같으니, 지휘를 진지하게 고려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남겼다.
몇 년 후 그는 지휘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1996년 네덜란드의 소규모 교향악단을 맡으면서 지휘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이 같은 바이올린 연주자로서의 경험이 지휘 인생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17년 넘게 RCO에서 악장을 했습니다. 번스타인뿐 아니라 카라얀, 하이팅크 등 세계적 지휘자들과 함께 연주했죠.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수많은 곡을 직접 연주했고, 같은 곡을 수백 번 다뤄보기도 했습니다."
그의 '악단 조련 마법'은 한국에서도 빛날 수 있을까.
그는 오는 2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4일 경기도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경기필하모닉을 객원 지휘한다.
바게나르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서곡,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서울 협연자 최예은, 고양 김봄소리),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그는 경기필과의 리허설에 대해 "잠재력이 엄청난 오케스트라"라며 "단원들이 모든 음악을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변할 수 있는 특성을 보였는데, 이는 홍콩필하모닉이 지녔던 특징"이라고 평했다.
이어 "앞으로 좋은 상임 지휘자가 선임돼 이들과 함께한다면 분명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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