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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살해·시신유기 환경미화원은 '리플리' 꿈꿨나

진단서 위조해 동료 휴직 처리·딸들에겐 용돈 보내고 목소리 위조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톰 리플리의 삶은 가짜였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자신을 무시하던 부자 친구 필립을 살해한 다음부터 가짜 삶이 시작됐다.
그는 필립 행세를 하며 필립의 돈을 인출해 쓰고 고급 호텔에서 생활한다. 질시하던 필립의 인생을 송두리째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장 행복하다고 여기는 순간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0년 작품 '태양은 가득히'의 내용이다.
15년 지기 동료를 살해한 환경미화원은 행태는 이 영화의 주인공 리플리와 닮디 닮았다.
동료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환경미화원은 알리바이가 필요했다.
평소 피해자와 가장 가깝게 지냈기에 의심이 곧 자신에게 뻗칠 것을 직감했다.
그는 '아예 처음부터 동료가 죽지 않은 것처럼 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곧 실천했다.
지난해 4월 동료를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소각한 환경미화원 A(50)씨는 경기도 한 병원의 도장이 찍힌 진단서를 위조했다.
병명은 허리디스크. A씨는 진단서와 함께 숨진 동료 B(59)씨 이름이 적힌 휴직계를 팩스로 구청에 제출했다.
진단서가 첨부된 휴직계를 받은 구청은 아무런 의심 없이 5월부터 B씨가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구청의 의심'을 해결한 A씨는 다음 목표를 가족으로 정했다.
A씨는 생전 B씨가 술자리에서 '아내와 이혼하고 딸들에게 가끔 생활비를 보내준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는 곧 B씨 휴대전화로 딸들에게 '아빠는 잘 있다', '생활비는 있니?'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받은 B씨 딸들은 아버지가 동료의 손에 살해된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A씨는 B씨 딸들이 더는 의심하지 못하도록 한 번에 60만원씩 3차례에 걸쳐 생활비를 보냈다. 대학교 등록금도 기간에 맞춰 입금했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A씨는 평소처럼 출근해 차를 타고 마을을 돌며 쓰레기를 수거했다.
'태양은 가득히'처럼 A씨도 동료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리면 전화를 받아 연기했다.
A씨의 치밀한 범행으로 가족과 지인 누구도 B씨가 이미 살해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살해된 채 쓰레기봉투에 담겨 불태워진 B씨는 이후로도 일 년 넘게 휴직 중인 환경미화원이자,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로 존재했다.
완전범죄를 꿈꿨던 A씨 범행은 술집에서 B씨 카드를 사용하면서 꼬리를 잡혔다.
범행을 의심한 경찰은 A씨 원룸을 압수수색해 B씨 신분증과 위조한 진단서, 혈흔이 묻은 가방 등 증거를 찾아냈다.
동료를 살해한 잔혹한 환경미화원이 쓴 선한 가면이 일 년 만에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태양이 가득히'에서도 시신을 묶은 줄이 요트에 끌려와 리플리의 범행이 탄로 난다.
A씨는 "나는 B씨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잡아뗐으나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기 전 모든 것을 실토했다.
그는 "술자리에서 B씨가 내 가발을 잡아당기고 욕설을 했다. 홧김에 목을 졸랐다"고 털어놨다.
경찰은 살인과 시신유기 혐의로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며, 시신 훼손 여부와 범행 동기 등을 조사 중이라고 19일 밝혔다.
jay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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