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배 우승에 돌부처도 '방긋' 이창호 "기뻤습니다"
'상하이 대첩' 전설의 주인공…농심배 19승 3패 최강
"한국 후배들 다시 힘을 내서 중국 위협할 것"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바둑 전설 이창호(43) 9단은 한중일 국가대항전인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농심배)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이창호 9단은 '돌부처'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대국 중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은 물론 평소에도 워낙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 붙여진 별명이다.
하지만 최근 후배들이 5년 만에 농심배 타이틀을 중국에서 빼앗아 오자 이창호 9단도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15일 한국기원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이창호 9단은 얼굴에 웃음을 품지는 않았지만 "한국과 중국의 실력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한국이 많이 밀려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번에 굉장히 잘해서 되게 기뻤다"고 말하며 좋은 기분을 표현했다.
한국은 지난 1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19회 농심배 본선 13국에서 김지석 9단이 중국 최강자 커제 9단을 꺾으면서 대회 우승을 확정했다.
한국의 12번째 농심배 우승이다.
지난 4년간 중국이 우승컵을 싹쓸이해갔던 터라 더욱 반가운 우승이었다.
이창호 9단은 농심배가 처음 생긴 1999년부터 6회 연속으로 출전해 우승 결정국을 승리로 장식하며 한국의 대회 6연패를 이끌었다.
또 8회, 11회 대회에서도 우승 결정국에서 승리했다.
한국의 농심배 우승 12번 중 8차례가 이창호 9단의 손으로 결정된 것이다.
특히 2005년 6회 대회는 전설로 남았다.
이창호 9단은 한국의 마지막 주자로 남아 홀로 5명(중국 3명·일본 2명)의 기사를 연파해 한국에 우승컵을 안겼다.
한국 부산에서 1명, 중국 상하이에서 4명을 내리 꺾으며 기적 같은 우승을 일군 이 활약은 '상하이 대첩'으로 불리고 있다.
이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실제로 드라마 '응답하라 1998'의 소재로 쓰이며 다시 한 번 회자했다.
그의 농심배 통산 전적은 19승 3패로 승률이 0.864에 이른다.
이창호 9단에게도 농심배는 특별한 대회다.
이창호 9단은 "아무래도 농심배와 인연이 깊은 것 같다. 보통은 세계대회에 많은 의미를 두기 쉬운데, 저는 오히려 농심배 쪽에 기억이 많이 남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개인적으로 부담감을 많이 느끼고 지금도 힘들어하는 편이다. 하지만 농심배에서는 처음부터 운 좋게 많이 이겨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결과가 잘 나와서 팬 여러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고 '겸손한 비결'을 밝혔다.
후배들에게 응원도 아끼지 않았다.
이번 농심배에서 첫 주자로 나와 6연승을 달리며 우승의 발판을 다진 신민준 7단의 활약도 칭찬했다.
신민준 7단의 6연승은 이창호 9단의 2005년 '상하이 대첩'과 2009년 강동윤 9단의 5연승을 넘어선, 한국 기사의 농심배 최다 연승 신기록이다.
이창호 9단은 "내 기록이 깨진 부분을 특별히 의식하는 것은 전혀 없다"며 "김지석 사범이 끝냈지만, 신민준 사범이 워낙 잘 해줘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대견해 했다.
'후배들에게 한 말씀'을 부탁하자 이창호 9단은 "최근 중국의 성적이 많이 좋아져서 한국이 고전하고 있었는데, 농심배에서 우리가 잘했고 박정환 사범의 세계대회 성적도 계속 좋다"며 "일단 반격했으니 이제부터 한국이 다시 좋은 성적으로 중국을 위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한국 바둑은 최근 침체기를 겪었다. 강동윤 9단이 2016년 2월 LG배에서 우승한 이후 중국에 메이저 세계대회 타이틀을 모두 내줬다가 올해 1월 박정환 9단이 몽백합배에서 우승하고서야 거의 2년 만에 무관에서 탈출했다.
이후 박정환 9단이 하세배에서도 커제 9단을 꺾고 정상에 오르고, 단체전인 농심배에서도 한국이 우승을 탈환하면서 좋은 기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창호 9단은 "사실 바둑 정세를 전망하기는 어렵다. 제가 뉴스에 느린 편이어서 최근 정세에는 오히려 제가 더 어두울 것"이라면서도 "제 느낌으로는 한중의 실력 차는 거의 없다. 이제 기세를 탔으니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지다 보면 자신감이 없어서 주눅이 들게 된다. 이제 많이 이겼으니 한국 기사들도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응원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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