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 '여권 후진국' 사우디·이란 상반된 풍경(종합)
사우디, '금기 깨는' 여성 정책…이란은 여권 운동에 강경
르몽드 "앞섰던 이란 여성들, 사우디에 뒤처지는 느낌"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중동의 이슬람권에서 공권력이 여성의 복장을 규제하는 곳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꼽을 수 있다.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중심국인 만큼 엄격한 종교적 율법을 일상에까지 적용하는 탓이다.
두 나라 모두 여성의 복장이 자유로운 편이었으나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으로 이란이 신정일치의 종교적 통치로 급변해 여성의 복장까지 엄격히 통제하자 정치·종교적 라이벌인 사우디도 '적대적'으로 공진했다.
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여권의 후진국이라고 비판받지만 여성의 사회 활동과 복장 면에서는 이란이 사우디보다 상대적으로 낫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복장을 살펴보면 이란에서 여성은 외출할 때 히잡을 의무로 써야 하지만, 머리카락 전체를 가리지 않아도 되고 색깔도 자유롭다.
또 히잡만 쓰면 나머지 복장은 반소매와 반바지, 발목이 드러나는 치마가 아니면 대부분의 옷이 허용된다. 이란에서 젊은 여성들은 청바지나 몸매가 드러나는 쫄바지를 입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반면 사우디에서 여성은 외출 시 히잡은 물론 온몸을 덮는 통옷인 아바야를 입어야 한다. 무늬가 있는 아바야를 입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검은 색깔이다. 눈만 내놓은 니캅도 이란에선 매우 드문 반면 사우디에서는 흔하다.
그래서 굳이 비교하자면 테헤란의 거리 여성의 옷이 리야드보다 상대적으로 다채로운 느낌이다.
무엇보다 이란에선 여성도 운전(오토바이 제외)할 수 있어 사우디보다 이동의 자유가 낫다. 남녀를 공공장소에서 분리하는 정책도 사우디가 더 강력하고, 무엇보다 여성의 사회 활동의 대부분을 제한하는 사우디의 남성 보호자 제도는 여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폐단으로 꼽힌다.
사우디는 불과 2년여 전에서야 여성에 참정권을 처음 부여했다.
그러나 이런 평가가 지난해부터 역전되는 분위기다.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 때문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의 미래 청사진인 '비전 2030'에 따라 여성의 교육과 사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여성의 축구경기장 입장, 운전 허용, 남성 보호자 제도 완화 등 다른 나라에선 당연한 일이지만 사우디와 과거와 비교하면 파격적인 올해부터 잇달아 시행된다.
사우디 언론에서 지난해부터 유독 '사우디 최초의 여성 ○○○ 등장'이라는 표현이 거의 매일 등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사우디 언론들은 사우디의 사회, 경제, 문화에서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사우디 국영 알아라비야 방송은 8일 '2018년은 사우디 여성에게 획기적인 해가 될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지난해 사우디가 단행한 친(親)여성 정책을 길게 나열했다.
국영 일간 사우디가제트도 8일자에 "이슬람은 여성을 사회의 최우선에 두지만 남성 중심의 시스템과 일부 관습, 전통 탓에 사우디에서 여성의 위치가 약해졌다"면서 "여성은 남성과 고등 교육에서 경쟁하고 정치, 경제 행정부의 최고 위치에서 자리를 넓히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언론의 보도를 보면 여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다.
사우디에선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머리카락을 모두 꼼꼼히 가렸던 히잡을 약간 느슨하게 쓰는 모습도 최근에 목격된다고 한다.
이런 사우디의 급속한 변화를 두고 내부에 팽배한 불만을 누그러뜨려 왕권을 안정시키고, 여성을 내세워 국제사회에서 인권을 탄압한다는 사우디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보여주기식 쇼'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사우디가 추구하는 변화의 방향과 속도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사우디보다 앞섰다고 평가됐던 이란에서는 여성의 인권을 두고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강제로 히잡을 쓰지 않겠다는 여성 활동가들의 공개적 항의가 이어졌다.
아직 이란 사회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급진적이고 매우 일부로 여겨지지만,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히잡 반대 캠페인이 매우 활발했다.
여성층의 지지가 높은 중도·개혁 성향의 현 정부는 여권 신장을 강조하지만 보수적인 이란 사법 당국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 캠페인에 참여한 여성 30여 명이 사법 당국에 체포돼 일부가 기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사법부가 운영하는 미잔통신은 8일 히잡 반대 운동에 참여해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벗은 여성 1명이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8일 연설에서 "정숙한 여성의 옷차림(히잡)을 장려함으로써 이슬람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서방의) 일탈적 생활방식으로 여성이 빠지는 것을 막았다"면서 "히잡은 고결의 의미이지 속박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7일에는 테헤란 시내 밀라드타워 대강당에서 여성의 사회참여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렸다.
행사의 한 순서로 이란 전통음악에 맞춰 여성 5명이 무대에서 춤을 췄는데, 이를 본 행사 참가자 중 남성이 섞였던 게 문제가 됐다.
외간 남성 앞에서 여성이 춤을 추는 것은 이란에서 금기이기 때문이다. 모하마드 자파르 몬타제리 이란 검찰총장은 이 공연이 범법 행위였다면서 경위를 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이달 1일엔 프로축구경기가 열린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에 몰래 들어가려던 여성들이 경찰에 체포됐다.
사우디가 내놓은 나름 '파격적인' 여성 정책은 대부분 이란에서 이미 허용되는 수준이다.
그러나 현재 분위기는 오히려 사우디가 여성에 개혁적이고, 앞섰던 이란은 퇴행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3월호는 이를 두고 '사우디 여성들이 갑자기 앞섰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란 여성들은 한때 자신이 걸프의 유행을 선도한다고 자부했는데 사우디의 최근 개혁을 보고서는 뒤처졌다고 느낀다"고 평론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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