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우리동네] 전통농법 고수하는 천년 역사 완주 '봉상생강'
'전주부 생강 으뜸' 옛 문헌에 명시…봉상생강 농업관광화 시동
(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Eat the ginger.'
생강을 뜻하는 영어단어 'ginger'가 포함된 영어 숙어다. '생강을 먹다'가 아닌 '가장 좋은 부분(노른자위)을 차지한다'는 뜻의 표현이다.
시간을 거슬러 고려 시대엔 왕이 생강을 상으로 하사했고, 생강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까지 벌어졌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생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귀한 식재료였다.
혈액순환과 항암, 면역력 증진, 고혈압, 뇌경색 등에 효능이 탁월하다고 알려졌다.
생강 중에서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전북 완주군 봉동읍 '봉상생강'이 완주군민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은 까닭이다.
◇ 천년 전통 봉상생강…고려사에 등장
완주군 봉동읍에서 재배되는 봉상생강은 봉동읍의 옛 지명인 '봉상'에서 따온 이름이다.
1914년 3월 봉상면 9개 리(里)와 우동면 5개 리가 합쳐져 봉동면이 됐다. 봉동면은 다시 1973년 7월에 읍으로 승격했다.
행정구역명 개칭 후 봉동지역 생강 재배 면적은 1994년에 정점(536.1㏊)을 찍었다가 산업화 흐름에 휩쓸려 1/5수준(102㏊·2015년)으로 축소됐다.
생산량은 2011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2015년에는 1천387t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봉상생강이 품질 으뜸으로 전국에 회자하는 배경에는 우수한 종자가 뿌리내릴 수밖에 없는 재배 환경이 있다.
생강 재배지는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와 은상리에 걸쳐 있다.
봉동읍 북쪽은 봉실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남쪽은 동쪽에서 서남쪽으로 흐르는 만경강 수계 고산천 물줄기가 들녘으로 뻗어있다.
만경강 수계 여러 물길이 굽이치면서 형성된 토양은 물 빠짐이 좋고 영양이 풍부해 양질의 생강을 수확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생강 종자와 수확한 생강을 보관하는 '생강굴'이 들어설 최적 조건이기도 하다.
봉상 생강 재배 역사는 현재까지 주어진 기록에 의하면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사를 보면 현종 9년(1018) 8월에 왕이 전교하기를 "을묘년(1015년) 이래 북방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부모와 처자식에게 계급에 따라 차와 생강[薑], 베를 하사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현종은 전사 유가족들에게 생강을 내렸을까.
고대 중국 약물학서인 신농본초경에서는 생강을 "오래 복용하면 (몸의) 나쁜 냄시를 없애준다"고 하고, 또 다른 의학서인 명의별록(名醫別錄)에서는 추위로 인한 병과 두통, 코막힘, 구토 치료에 좋다고 했으니 약물로 하사했음을 엿볼 수 있다.
완주군은 당시 생강 생산지가 전주부(전주-완주 행정구역 분리 전 명칭)밖에 없었다는 점을 들어 봉상 생강의 유래를 추정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의보감, 택리지 같은 문헌에도 '생강은 우리나라에서 오직 전주부에서 생산', '생강은 전주 것이 으뜸'이라는 내용이 보인다.
◇ 전통농법 고수…'최초 생강 재배지' 자부심 지킨다
봉동읍에서 생강 재배에 종사하는 완주군민은 전통 농업을 고수하며 생강 최초 재배지역이라는 자부심을 지킨다.
대부분 농가는 생강에 볏짚을 덮는 방식을 택했다.
토양을 개량하는 '땅심 돋기'→종자 소독→파종→볏짚 덮기→생강 수확→윤작 준비 과정이 순환된다.
비닐은 사용하지 않고 전통 방식으로 밭갈이하며 연작(같은 땅에 같은 작물을 해마다 심는 일)은 하지 않는다.
파종 후 누에똥이나 썩은 퇴비, 쇠똥 따위를 거름으로 준 뒤 볏짚으로 덮어주고 수확한 생강을 토굴에 저장한다.
허균이 지은 한정록이나 홍만선의 산림경제 등 고문서를 토대로 전통 농업 방식을 구현했다.
한때 현대화 방식을 도입했었지만, 고유 방식만 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늘을 만들려고 흑색 비닐을 덮어봤지만, 생강 싹이 뻗어 나가지 못했고, 트랙터로 밭을 갈면 비를 맞았을 때 흙 밀도가 높아져 우수한 품종 생산이 어려웠다.
결국 선조의 지혜가 담긴 방식으로 되돌아왔다.
완주군은 토종 생강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은 봉동 생강의 화려했던 명성을 회복하고자 생강 재배 방식이나 역사를 밝힐 고증위원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 "향 진한 생강 맛보세요"…축제 성황에 가공식품도 풍성
김장철이면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가 생강이다. 김장철을 앞두고 봉동읍 생강골 시장에서는 생강대축제가 열린다.
지난해 11월 3일부터 사흘간 많은 관광객과 지역민이 이곳에서 생강의 알싸한 향과 맛에 반했다.
음식 양념이기도 하지만 질병 치유와 보양에 효능을 보이는 약재로도 쓰이기 때문에 관심이 더 높았다.
생강을 이용한 가공식품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생강 절임, 생강액기스, 생강가루, 생강 한과 등이 대표적이다.
마늘보다 강한 알싸한 맛을 줄이고자 생강을 한번 물에 삶아내는 방법으로 더 친숙하고도 달큰한 맛을 냈다.
최근 봉동농협에서 출시한 '생강 골 봉동 편강'도 표백제나 향료 등 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인기다.
봉상생강을 활용해 고부가 기능성 건강식품을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완주군은 생산농가-지역연구소-대학-기업체와 유기적으로 연계해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지표성분 선정을 비롯해 원료 표준화, 기능성 및 안전성 평가, 학술 및 홍보마케팅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 봉상생강은 '농업 유산'…에코 농업관광화(化) 움직임
완주군은 생강농업 관광 활성화를 위한 로드맵을 구상 중이다.
봉상생강 학습체험장 운영과 유·무형 자원의 스토리텔링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생물 종이 공생하는 생강굴을 학습체험장으로 조성해 외부에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생강굴과 재배지 등 농업 유산이 있는 곳을 주변 경관과 어울리는 '에코 탐방코스'로 개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탐방코스 내 휴게시설이나 전망시설, 봉상생강에 대한 기본정보를 제공하는 시설을 배치할 수도 있다.
봉상생강 역사와 문화를 근간으로 한 흥미로운 역사를 알아보는 '스토리텔링'도 고려 대상이다.
봉동읍에는 구바위(세 개의 바위가 세 곳에 나뉘어 있음) 전설이 내려져 오는데 이곳이 최초로 생강을 발견·재배한 장소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 초에 신만석이라는 사람이 중국 봉성현이라는 곳에서 생강 뿌리를 얻어와 전남 나주와 황해도 봉산군에 심었지만, 토양이 맞지 않았는지 재배에 실패했고, 결국 재배에 성공한 곳이 완주의 봉상(지금의 봉동)이었다는 설도 있다.
완주군은 봉상생강 설화를 동화책이나 만화책 형태 스토리텔링 북 제작도 준비 중이다.
완주군 관계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완주군 특산물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아 홍보 효과를 극대화할 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전통 방식으로 고집 있게 생강을 재배하는 완주군민이 더욱 자부심을 품고 농업에 종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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