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주도 시리아 '인도주의 휴전' 무용지물 전락
내전 당사자 합의없는 러시아 일방적 선언에 교전 계속
구호단체 "하루 5시간 휴전, 실효성 없어"…주민 "정부 못믿어 안떠나"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시리아 내전 '30일 휴전' 결의안을 제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안한 5시간짜리 '인도주의 휴전'이 지난 27일(현지시간)부터 시행됐으나 교전이 계속되고 주민들도 피란길에 오르지 않으며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이날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러시아가 선언한 인도주의 휴전에도 시리아 정부군과 동(東) 구타 장악 반군 간 교전이 계속돼 피란통로를 통해 대피한 피난민은 없었고 구호물자도 지원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NYT는 첫날 동구타에서 "민간인들은 피란하지 않았고 부상자들이 후송되지 않았으며 인도주의 구호품은 (동구타로) 흘러들어 가지 못했고 전투는 계속됐다"고 지적했다.
친정부군과 반군의 공습은 심지어 이날 러시아의 제안으로 동구타 북쪽 두마의 와피딘 검문소에 설치된 피란통로 일대에서 주로 발생했다고 NYT는 전했다.
양측은 휴전 시간에도 계속된 교전과 관련,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
앞서 유엔 안보리는 지난 24일 시리아 전역에서 30일간 휴전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이와 별개로 27일 매일 오전 9시에서 오후 2시까지 5시간 동안 민간인들의 탈출을 위한 인도주의 휴전 체제를 운영한다고 26일 예고했다.
국제구호단체들은 러시아가 주민 피란 및 구호물품 지원을 위해 추진되는 5시간 휴전은 비현실적이어서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중동지역 책임자 로버트 마르디니는 "우리는 시리아 최전선에 구호물품을 지원한 오랜 경험이 있으며 검문소들을 통과하는 데에만 최대 하루가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며 "구호물자 수송단을 5시간 안에 구호품 수송단을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당국이 설치한 피란통로도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FT는 유엔과 국제 구호단체 관계자들을 인용 "(러시아의) 독자적 행동은 동구타를 통제하는 반군들과 조정을 통해 협의한 것이 아니어서 민간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피란통로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날 와피딘 검문소 주위에는 임시진료소와 피란민을 태우고 떠날 버스들이 대기하고 있었으나 동구타 주민은 나타나지 않았다.
국제 구호단체 관계자들도 시리아 내전 당사자 간 합의가 없었기 때문에 동구타 주민들이 피란통로를 이용하는 데 안전하지 않다며 나타나지 않았다고 FT는 전했다.
ICRC 다마스쿠스 지부 관계자 잉기 세드키는 "인도주의 통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철저한 계획과 모든 관계자의 합의가 필요하다"며 "떠나고자 하는 주민들에게는 제대로 된 대피소와 의료 지원이 제공돼야 하고 남고자 하는 주민들에 대한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동구타 주민들이 '생지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FT는 "주민들은 수년간 반군 장악지역에 거주하다 정부군 장악지역으로 넘어가면 괴롭힘을 당하거나 체포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입대 적령기 아들을 둔 가족들은 그동안 정부군이 탈환한 지역에서 그래 왔듯 아들이 군에 강제징집될까 우려해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NYT도 "주민들은 반군 장악지역을 떠났다가 자칫 자신들의 집에서 영원히 밀려나거나 정부군에 의해 체포되거나 징집 또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동구타 내 두마 지역에 거주하는 모하마드 아델은 주변의 지인들은 정부를 믿지 못해 동구타를 떠날 생각이 없다면서 "(동구타) 밖에서 우리의 생명을 누가 보장해주겠나"라고 물었다.
mong07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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