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보공작 설계한 日헌병대장 '러 파괴공작서' 첫 번역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아카시 모토지로 '낙화유수' 내용 최초 확인
유럽내 반러세력 규합 전모 고스란히…"3·1운동 촉발 공작체계 기안자"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3·1운동을 비롯한 항일운동의 촉발 요인을 제공하고 일제강점기 정보공작 체계의 토대를 만든 일본 헌병대장이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고자 치밀히 기획한 정보공작 전모가 공개됐다.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정주진 연구교수는 초대 한국 주차(駐箚·주재) 헌병대장이던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가 작성한 제정 러시아 파괴 공작서 '낙화유수'(洛花流水) 번역을 최근 마무리했다고 28일 밝혔다.
이 문서는 아카시가 러일전쟁(1904년 2월∼1905년 9월) 시기 유럽에서 러시아 배후를 교란하고자 반(反)러시아 세력을 규합해 전개한 공작을 기술한 보고서다. 본문과 의미가 동떨어진 제목은 내용을 은폐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카시는 러일전쟁 발발 직후 일본 육군 참모차장 고다마 겐타로(兒玉 源太郞)의 지시로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파견돼 러시아 배후 교란 임무를 맡았다.
보고서는 1937년 세워진 일본 육군 정보학교 '나카노 학교'의 교재로 활용돼 존재는 이미 알려졌으나 내용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고 정 교수는 밝혔다.
9개 장(章)으로 구성된 글은 A4 용지 80장 분량이다. 공작 대상인 반러시아 단체·인물의 성향과 취약점을 분석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공작의 시작과 전개 과정, 첩보 수집, 비밀 연락, 대인 접촉 방법 등 실질적 공작 내용도 담겼다.
문서에 따르면 아카시는 당시 러시아 지배를 받던 핀란드의 반러시아 세력을 규합, 1904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러시아 반정부세력 연합회의 개최를 배후에서 지원한 것으로 드러난다.
이듬해 4월에는 러시아 내 반정부 무장활동 지원 목적으로 모든 경비를 일본이 대고 소총 2만4천500정, 탄환 420만발을 일본 무역상사 협조로 러시아로 밀수했다는 공작 내용도 등장한다.
아카시는 러일전쟁이 일본 승리로 끝난 직후인 1905년 10월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1907년 10월 초대 한국 주차 헌병대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러시아를 상대로 개발·활용한 공작 수법을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했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아카시는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한국 주차군 헌병사령관으로 승진했고, 일제 경찰 최고 책임자인 경무총감까지 겸임하며 독립운동 탄압과 무단통치의 기틀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특히 아카시는 한반도 각 지방 헌병대와 경찰서에 정보 수집 및 중앙 보고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가 만든 경찰 정보체계는 일본 강점기 한국인들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식민통치의 토대가 됐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정 교수는 "러일전쟁은 일본이 한반도의 주도권을 잡는 계기가 됐고, 거기에 아카시가 크게 이바지했다"며 "아카시는 아울러 한일 강제병합의 기안자 중 한 명이었을 뿐 아니라 3·1운동을 촉발할 정도로 의병들을 무수히 죽이고 민족을 탄압하는 기초 틀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일본이 당시 얼마나 잔학했는지 등 표면적으로 나타난 행위에만 분개할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거대한 정보공작의 개념과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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