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한 브루크너, 코리안심포니의 새 시대를 열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정치용 예술감독 취임기념 음악회 리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브루크너 교향곡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묵직하지 않은, 그러나 정갈하고 듣기 쉬운 브루크너였다. 쾰른 대성당과 같은 웅장한 건축물에 비유되곤 하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놀랍게도 시골의 작은 성당처럼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지휘자 정치용만의 깔끔하고 정리된 스타일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이하 코리안심포니)와 만나자 브루크너의 음악도 기적처럼 변모했다.
지난 22일 예술의전당에서 코리안심포니 예술감독 취임기념 공연을 선보인 지휘자 정치용은 교향곡 분야에서도 난곡으로 꼽히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을 선택했다. 그가 이 곡을 선택한 것은 여러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무엇보다 이 곡은 코리안심포니 초대 예술감독인 고(故) 홍연택 지휘자가 반드시 무대에 올리고 싶어 했던 교향곡이지만 홍연택은 끝내 이 교향곡을 무대에 올리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후배 지휘자인 정치용은 코리안심포니의 예술감독 취임 공연에서 홍연택이 그토록 원했던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을 지휘함으로써 고인의 지휘봉을 이어받는다는 뜻을 전했다.
그뿐만 아니라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코리안심포니가 창단 초기부터 자주 연주해왔던 주력 레퍼토리로, 지난 2005년 예술의전당 음악당 재개관 음악회에서 코리안심포니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7번을 묵직하면서도 장엄하게 연주해내 갈채를 받은 바 있다. 또한, 임헌정 예술감독 재임 시 코리안심포니의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회는 음악계의 화제가 됐으며 교향곡 전곡 연주를 담은 코리안심포니 음반은 작년 미국 브루크너 협회의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정치용 시대를 맞이한 코리안심포니는 이번 공연에서 고전적이고 깔끔한 브루크너 연주를 선보이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다만, 이번 공연 초반에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간의 호흡이 어긋나고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아직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1악장 첫 음의 출발부터 다소 불안했다. 그러나 제1주제가 폭발적인 소리로 연주되는 1악장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코리안심포니 금관악기 군의 저력이 드러나기 시작해 2악장부터 정치용과 코리안심포니의 연주는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장대한 현악기의 노래가 돋보이는 3악장에서 정치용의 지휘 스타일은 코리안심포니의 전임 예술감독인 임헌정과 대조적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몇 해 전 코리안심포니와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를 선보인 임헌정은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의 느린 3악장을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비견될 만큼 관능적이고 황홀한 사운드로 표현해내 인상 깊었다. 반면 정치용의 지휘로 새롭게 변모한 3악장은 담백하고 자연스럽게 들렸다. 음과 음 사이를 인위적으로 연결해내며 바그너 풍의 차진 소리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한 악구의 끝 부분을 마무리하듯 처리하는 그의 지휘로 인해 브루크너의 호흡이 긴 선율은 부담스럽지 않게 들렸고 숨통을 트이는 듯했다.
지휘자 개인의 음악해석을 단원 모두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중요한 포인트와 템포의 흐름을 명확하게 지시하며 단원들에게 많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지휘자 정치용. 그의 지휘를 지켜보며 민주적인 리더의 모습이 떠올랐다. 앞으로 정치용과 코리안심포니가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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