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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첫 관문부터 원천봉쇄…"사실상 하지 말라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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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첫 관문부터 원천봉쇄…"사실상 하지 말라는 얘기"

"재개발ㆍ새 아파트 반사이익…공급부족에 5∼6년뒤 집값 더 올라"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정부가 20일 재건축 사업의 안전진단을 대폭 강화한 것과 관련해 부동산업계는 "앞으로 재건축을 하지 말라는 의미나 다름없다"며 앞으로 30년 이상 된 단지들의 재건축이 상당히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무분별한 재건축은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안전진단 강화로 재건축 사업이 중단되면 앞으로 서울지역의 집값이 더욱 폭등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D등급 받아도 공공기관 적정성 평가…정책적 판단 하겠다는 얘기"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안전진단 강화가 재건축 연한 강화 못지 않게 재건축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은 "구조안정의 가중치가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 조치 전에도 40%였는데, 이를 50%로 더 높이겠다는 것은 재건축의 첫 관문부터 사업을 틀어막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며 "앞으로 중층 아파트의 재건축 사업이 상당 기간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허 연구위원은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 구조 안전보다는 층간소음, 배수관 노후, 누수, 주차 불편 등 삶의 질 저하가 더 큰 문제였고 이를 감안해 지난 정부에서 규제를 풀었던 것"이라며 "불과 몇 년 만에 다시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국민의 삶의 질보다는 집값 잡기의 수단으로 재건축 규제를 활용하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칙없는 정부 정책으로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과거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사례를 주목한다.
중층 아파트 재건축의 상징이던 은마아파트는 2002년부터 안전진단을 추진했으나 집값 불안 등을 이유로 정부와 지자체가 안전진단을 승인해주지 않아 2010년 3월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기까지 무려 8년이 걸렸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 만들었던 강력한 안전진단 평가 기준으로 인해 예비안전진단에서만 세 차례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건설업계는 오히려 구조안전 가중치가 규제 완화 전보다 높아짐에 따라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 한' 재건축 사업이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1990년대 지어져 내진 설계 등이 적용된 단지는 물론이고 1980년대에 지어져 내진 설계가 되지 않은 아파트조차 첫 관문을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현지조사(육안진단)부터 한국시설안전공단 등 전문성 있는 공공기관을 끌어들이도록 하고, 'D등급'인 조건부 재건축 판정이 날 경우 다시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거치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옥상옥'의 규제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J&K도시정비 백준 대표는 "무조건 재건축이 가능한 'E등급' 판정은 사실상 집이 붕괴 직전일 때나 나온다"면서 "대부분 조건부 재건축인 'D등급' 판정을 받는데 여기서 다시 공공기관의 적정성 평가를 받으라는 것은 구조안전보다는 사실상 '정책적 판단'에 의해 재건축 허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안전진단을 사실상 통과했더라도 집값이 오르면 얼마든지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무분별한 재건축 사업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에서 일정 부분 기준 강화는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송파구의 한 재건축 추진 단지는 구조안전 가중치가 40%였을 당시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고 반려됐다가 2015년 20%로 기준이 완화된 후 안전진단을 문턱을 넘어섰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준이 너무 완화돼 안전진단 신청만 하면 통과되는 '프리패스'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과도하게 완화된 기준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지, 과도한 허들을 만들어 재건축 사업을 아예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 30년 중층 단지 타격 불가피…재개발 '풍선효과', 공급부족 우려도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재건축 기대감으로 가격이 급등했던 준공 30년 안팎의 중층 아파트 단지들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를 비롯해 서울 송파구 올림픽 선수촌·기자촌·훼밀리 아파트, 노원구 상계동 주공아파트 단지 등이다. 이들 지역의 아파트 단지들은 상당수 안전진단을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조건부 재건축 판정이 내려진 것까지 공공기관의 적정성 평가를 다시 받도록 하는 것은 지방선거를 앞둔 지자체의 선심성 행정까지 막겠다는 의지"라며 "이제 막 재건축 추진을 시작한 단지들의 가격 상승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아직 안전진단 신청조차 못한 준공 30년 아파트들이 상당수 비강남권에 몰려 있어 강남-비강남권 아파트의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서울에서 재건축 연한이 도래한 단지 10만3천822가구 가운데 강남 4구 물량은 2만6천25가구로 전체의 25%에 불과하다. 나머지 75%는 비강남권이다.
함 센터장은 "현재 집값 상승을 주도해온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나 대치동 은마아파트,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등은 이미 안전진단을 통과했고 목동이나 상계 등 중층아파트들은 아직 안전진단을 신청한 곳이 없다"며 "이들 지역의 재건축이 지연됨에 따라 강남-비강남권의 주거환경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양도세 중과 조치,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강화,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등 대출 규제, 금리 인상 등 악재가 줄을 잇는 만큼 집값이 당분간 오르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안전진단 강화, 조합원 지위양도 금지, 초과이익환수에 이어 앞으로 분양가 상한제까지 도입되면 재건축 사업에 4중 족쇄가 채워지는 셈"이라며 "종전처럼 투자 수요들이 몰려들긴 힘들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그러나 "양도세 중과 조치 시행으로 매물이 많지 않은 상황이어서 가격이 급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동안은 강보합세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규제가 없는 재개발 사업이나 신규 분양 아파트 등으로 풍선효과가 일어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함 센터장은 "한남뉴타운, 흑석뉴타운 등 재개발 사업 추진 단지,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분양가 규제로 시세차익이 가능해진 신규 분양 단지에 유동자금이 대거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재건축 규제로 인한 집값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지금부터 재건축을 시작해도 최소 10년이 걸리는데 안전진단부터 발목이 잡히면 5∼6년 뒤에는 입주 물량이 줄어 수급 불균형이 나타날 것"이라며 "신도시 개발 등 대규모 택지개발도 중단된 상태에서 재건축 규제가 서울지역의 집값 상승을 부추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자산관리연구원 고종완 원장도 "정부가 당장 집값 잡는 데만 급급해 미래 주택 수급은 내다보지 않는 근시안적 정책을 내놓고 있다"며 "한동안 재건축 사업이 어려워지면 집값은 안정되겠지만 앞으로 수요가 폭발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sm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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