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원주 윈터 댄싱카니발
추운 겨울, 뜨거운 감동의 춤 축제
(원주=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춤의 도시인 원주가 한겨울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열린 원주 윈터 댄싱카니발은 세계인이 춤으로 한데 어우러져 감동을 불러일으킨 문화올림픽의 한마당이었다. 국내외 춤꾼과 원주 시민들은 문화로 소통하며 하나가 됐다. 추운 겨울의 뜨거운 감동! '아시아의 리우'를 표방하는 원주의 도심 춤판을 찾아 그 신명을 느껴봤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지구 반대편의 브라질에서는 리우 삼바 카니발이 열정적 분위기 속에 개최되고 있었다.
조화와 신명의 현장이었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시공을 넘어 하나로 어울렸다. 가무, 남녀, 노소 등 장르, 성별, 연령의 경계도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놀이를 통한 흥겨운 만남이다.
2018 원주 윈터 댄싱카니발의 개막식이 열린 2월 10일 오후, 강원도 원주의 도심에 자리 잡은 치악체육관은 뜨거운 열기로 넘쳤다. 국내외 댄싱팀이 무대에 올라 각기 개성 넘친 퍼포먼스를 펼치는 무대. 러시아, 태국 등 외국 공연단은 물론 원주를 중심으로 한 국내 공연단도 차례로 출연해 객석의 관람객과 한데 어울렸다.
단순한 경연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 러시아, 일본, 필리핀, 태국, 이탈리아, 폴란드, 중국 등 국내외팀이 축제 기간에 허물없이 하나가 되는 조화와 신명의 무대도 연출됐다. 일체의 차이와 거리를 훌쩍 뛰어넘어 멋지게 어울린 것. 열정 넘친 공연이 펼쳐질 때마다 객석의 관객들은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로 장단을 맞추며 신명의 대열에 합류했다.
◇ 평창동계올림픽에 맞춘 문화올림픽 한마당
'춤의 도시' 원주시가 '2018 원주 윈터 댄싱카니발'을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인 2월 10일부터 18일까지 치악체육관과 야외돔공연장, 치악예술관에서 개최했다.
'문화·세계·소통'을 슬로건으로 내건 이번 윈터 댄싱카니발은 해외 7개국 25팀 600여 명 등 국내외 92개 팀 4천500여 명이 경연한 댄싱카니발을 비롯해 국내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출연한 미니콘서트, 전문공연예술단이 무대를 꾸민 프린지 페스티벌 등으로 다채롭게 진행됐다. 이와 함께 한국과 일본 예술인들이 선보인 문화예술공연과 원주 대표 생산품인 옻의 문화를 체험케 한 옻 공예전도 열렸다.
이 중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은 개막일부터 폐막일까지 오후 3시 시작돼 두 시간여 동안 열정의 무대를 선사한 댄싱카니발이었다. 아이들의 치어리딩에서 노장년의 댄스까지 다양하게 선보인 국내외 출연팀은 각기 독특한 의상과 행위예술의 퍼레이드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 한 사례가 첫날 무대에 오른 '호저마을춤' 공연단. 원주시 호저면의 마을주민 40명으로 구성된 이 전통공연단은 오색 한복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강원도아리랑'의 음률에 맞춰 흥겹게 춤을 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오/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아주까리 정자는 구경자리/ 살구나무 정자로만 만나보세/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오/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이 공연단에 태국, 일본, 베트남, 중국 등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포함된 점이 더욱 이채로웠다. 마을주민이자 여성단원인 조용옥(60) 씨는 "본래 국적을 초월해 모두가 하나로 어울려 마을을 알려보자는 취지로 활동하고 있다"며 "함께 춤추다 보면 행복감이 저절로 커짐을 느낀다"고 말했다.
태국의 탄야부리스쿨 포크댄스그룹과 러시아의 고렌카무용단도 첫날 무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여성단원으로 구성된 탄야부리스쿨은 경쾌한 타악기 음률에 맞춰 자국의 전통무용을 신나게 췄다. 남녀 단원들이 한 몸처럼 정교하게 움직인 고렌카 역시 강약과 완급의 율동미로 객석의 탄성을 자아냈다.
아들, 딸과 함께 구경온 김성희(41·원주) 씨는 "국내는 물론 외국 춤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 '행복 만땅'이었다"면서 "초가을에 야외거리공연을 중심으로 열리는 원주 다이내믹 댄싱카니발과는 또 다른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태국 무용수 루지렉 콩디(20) 씨는 "한국에 와서 처음 공연해보는데 관객들이 박수와 함성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에 우리 공연단의 기분도 정말 좋다"고 미소지었다.
이들 태국과 러시아 무용단은 한국 공연단들과 함께 발레, 탱고 등 모두 여덟 가지 장르의 합동무대인 '월드 댄스 스테이지'를 선보임으로써 차이의 벽을 훌쩍 넘어 일체감을 낳는 문화의 절묘한 매력을 새삼 확인시켜줬다. 모두 14명으로 이뤄진 서울의 정동극장 공연팀은 특별출연해 역동적인 전통탈춤과 전통무용, 사물놀이로 무대를 한껏 빛냈다.
이번 축제의 퍼레이드 경연에서는 제1야전군사령부 태권도시범단이 영예의 최우수상을 받았다.
◇ 미니콘서트·프린지 페스티벌도 눈길
"생각해. 생각해봐요/ 이별이 왔다고 말할 건가를/ 약속해. 약속해줘요/ 기억한다고"
댄싱카니발 경연에 이어 진행된 미니콘서트 무대에서는 뮤지컬 배우 김지유의 노래가 간절한 목소리로 치악체육관을 울렸다. 그는 뮤지컬 '레미제라블' 중의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과 성악가 조수미가 2002년 월드컵 때 부른 '챔피언스'(Champions)를 차례로 불러 뭉클한 감동을 자아냈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오/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아주까리 정자는 구경자리/ 살구나무 정자로만 만나보세/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오/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이어 등장한 보컬리스트 '더 원'은 '겨울사랑' 등을 열창하며 애절한 감성을 전했고, 개막 이튿날에는 트로트계의 여신으로 불리는 장윤정 등이 출연해 특유의 창법으로 관람객을 사로잡았다. 2월 13일에는 뮤지컬계의 디바 차지연과 호소력 있는 가창의 고훈정이, 2월 14일에는 보컬의 끝판왕으로 일컬어지는 김범수와 일반인 출신 래퍼들의 희망인 우원재가 무대를 달궜다.
그룹 포레스텔라와 배우 박호산, 히트곡 '아모르 파티'의 주인공인 가수 김연자도 2월 15일과 17일 무대에 올랐다. 국내의 대표적 록밴드인 YB밴드는 열정의 무대로 축제 마지막 날의 대단원을 장식했다.
축제기간 오후 1시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 치악체육관 옆의 야외돔공연장에서는 먹거리와 함께 다양한 예술공연을 부담 없이 즐기는 프린지 페스티벌이 진행됐다. 원주매지농악보존회와 비보이 진조크루 등 56개 공연예술단체가 나와 비보잉, 뮤지컬, 오케스트라 등 각종 장르의 공연을 선사했다.
인근의 치악예술관에서는 비보잉 퍼포먼스 '브레이크 아웃'과 일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의 신년콘서트 '따뜻한 선물'이 열렸다. 2월 10일과 11일 오후 두 차례 공연된 '브레이크 아웃'은 다섯 명의 죄수가 탈옥하는 과정을 버라이어티 댄스와 코믹한 스토리로 표현한 넌버벌 공연으로, 입체적이고 환상적인 홀로그램 기술까지 접목돼 눈길을 모았다. 올해로 음반데뷔 20주년을 맞은 유키 구라모토는 '로망스' '타임리스 러브' 등 낭만적 작품들로 따뜻한 감성을 안겨줬다.
춤, 음악과 함께 미술작품으로 예술적 충만감을 더하는 전시도 빠뜨릴 수 없었다. 2월 7일부터 18일까지 치악예술관 지하전시실에서 개최된 '만년의 신비 생명의 숨결 원주, 옻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다' 전에는 국내의 유명 나전공예작가와 옻칠공예작가 8명이 옻 공예품과 평면작품 70여 점을 출품했다.
조선 초기부터 옻나무가 재배된 것으로 전해지는 원주는 현재 명실상부한 전국 최대의 옻 생산지다. 이번에 출품한 이형만(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과 양유전 칠화공예작가 등이 그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전시는 옻 작품의 아름다움으로 세계를 감동시켜 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 "추운 겨울, 따뜻하게 한 세계인의 축제"
군악의 도시로 알려졌던 원주가 춤의 도시로 탈바꿈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2000년 한국전쟁 발발 50주년을 계기로 군악축제 '세계평화팡파르'를 개최하기 시작했다가 2004년부터 '원주따뚜'라는 이름으로 바꿔 격년제로 치러왔다. 그러나 정체성 논란과 효용성 논란이 일면서 폐지됐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등장한 축제가 매년 초가을에 열리는 '원주 다이내믹 댄싱카니발'. 2011년에 첫 행사를 치른 이 축제는 해마다 급성장하며 2016년부터 3년 연속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됐다. 외국참가팀도 2012년 한 팀에 불과했지만 지난해는 13개국 45팀으로 증가할 만큼 제자리를 확고히 잡았다.
지난해의 경우 9월 19일부터 24일까지 엿새 동안 역대 최대 규모인 152팀, 1만2천여 명이 합류해 따뚜공연장, 원일로, 문화의거리, 문막읍 등 도심 곳곳에서 춤판을 벌여 축제 분위기를 달궜다. 이 중 외국인 참가자만도 1천600명에 달해 세계적 페스티벌로서 발판을 굳혔다.
다이내믹 댄싱카니발의 겨울판인 윈터 댄싱카니발은 이런 기반과 성과를 바탕으로 무난히 열릴 수 있었다는 평가다. 물론 도심인 원일로에 200m 길이로 마련된 무대에서 펼쳐지는 다이내믹 댄싱카니발의 대규모 거리퍼레이드와 달리 윈터 댄싱카니발의 경연 퍼레이드가 실내공간인 치악체육관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규모상 차이가 난다. 하지만 겨울축제 특유의 가능성을 새롭게 보여줬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이재원 원주문화재단 축제감독은 "원주 다이내믹 댄싱카니발은 시민이 중심이 된 참여형 생활문화 축제로 시작해 지금은 원주와 전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축제로 성장했다"며 "이번 윈터 댄싱카니발이 춤의 열기로 올림픽 붐을 조성하고 추운 겨울을 따뜻히 녹여준 세계인의 축제가 됐다"고 자평했다.
한편 원주시는 지난해 말 '2020 세계대학 치어리딩 선수권대회'를 유치해 세계적인 춤 도시로 도약하는 발판을 새롭게 마련했다. 2020년 9월에 열리는 이 대회에는 약 40개국에서 4천여 명이 참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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