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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한국환상곡' 초연 80주년에 평창서 울려 퍼진 애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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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한국환상곡' 초연 80주년에 평창서 울려 퍼진 애국가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38년 2월 20일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안익태는 아일랜드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해 자신이 작곡한 '한국환상곡'(Korea Fantasy)을 처음 선보였다. 단군의 건국으로 시작된 한국 역사와 아름다운 강산을 서정적 선율로 담아낸 1부, 일제의 압제에 신음하는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그린 2부, 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3부로 이뤄진 30분짜리 대작이었다. 영국의 오랜 지배를 받아오다 1937년 독립을 선언한 아일랜드 수도에서 아일랜드인의 손으로 '한국환상곡'이 초연됐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했다. 이후 안익태는 각국 관현악단을 지휘할 때마다 이 곡을 빼놓지 않았으며 여러 차례 개작했다.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의 비극을 표현한 4부를 추가했다.

'한국환상곡'이 한국인에게 더욱 큰 울림을 주는 까닭은 3부에 애국가가 수록됐기 때문이다. 193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안익태는 그곳 동포들이 애국가 노랫말을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곡조에 맞춰 부르는 것을 보고 애국가를 작곡하겠다고 결심한 뒤 1935년 가락을 완성했다. 안익태는 이를 시카고 한인교회에서 발표한 뒤 '한국환상곡'에 삽입해 전 세계에 알렸다.

대한인국민회를 비롯한 재미동포 단체들은 이 노래에 '대한국 애국가'라는 제목을 달아 중국 충칭(重慶) 임시정부에 국가로 제정해 달라고 요청했고 임시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보 제69호에는 "북미 대한인회가 안익태 작곡 '애국가' 신곡보의 사용 허가를 요구했으므로 1940년 12월 20일 국무회의에서 그 사용을 허가하기로 의결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임정의 김구 주석은 애국가를 보급하고자 한국어·중국어·영어로 된 '한국 애국가' 악보집을 귀국 직전인 1945년 11월 12일 중국에서 발간하기도 했다.


안익태의 애국가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불린 것은 1946년 5월의 일이다. 미군 군무원으로 귀국한 재미동포 배민수 목사가 딸을 만나러 이화여중에 갔다가 방문 기념 선물로 애국가를 들려주었고, 이를 악보로 만든 음악가 박은용이 이화합창단을 지도해 부르게 했다. 이 노래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공식 행사에서 사실상 국가로 불리고 있다. 애국가를 국가로 명시한 법률 조항은 없으나 1984년 제정된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과 2007년 제정된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 등에서 애국가를 언급해 법적 근거와 지위를 부여받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의 지시로 1947년 만든 노래를 이듬해 9월 9일 정부 수립 때부터 국가로 사용하고 있다. 제목도 우리와 똑같은 애국가이다. 월북 시인 박세영이 노랫말을 짓고 음악가동맹 중앙위원장을 지낸 광산 노동자 출신 김원균이 작곡했다. 가사는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銀金)에 자원도 가득한…"으로 시작하는 1절과 "백두산 기상을 다 안고 근로의 정신은 깃들어…"로 이어지는 2절로 이뤄졌다.


태극기의 역사는 이보다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미(朝美)통상수호조약의 미국 대표로 나선 슈펠트 제독이 1882년 5월 14일 김홍집 조선 대표에게 국기 제작을 요청하자 김홍집의 지시를 받은 역관 이응준이 미국 함정 스와타라호 안에서 며칠 만에 만들었고, 5월 22일 제물포에서 열린 조인식에서 성조기와 나란히 게양됐다. 일본 수신사 박영효는 4괘의 위치를 바꾼 깃발을 만들어 그해 9월 25일부터 일본에서 사용했으며 이 깃발이 1883년 5월 국기로 공식 제정됐다. 태극기는 중간에 일부 변형되기는 했으나 임시정부에서도 계속 쓰였고 대한민국 정부도 이를 계승했다.

북한 국기는 남한에서 인공기라고 부른다. 인민공화국기의 줄임말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흔히 공화국기라고 한다. 위아래로 남색, 가운데 빨간색이며 그 사이에 흰색 선이 있다. 빨강 바탕 왼쪽에는 5각형 별이 그려져 있다. 이 빛깔과 모양을 따서 홍람오각별기란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북한도 처음에는 태극기를 사용하다가 1948년 7월 10일 5차 인민회의의 결정에 따라 인공기로 교체했다.


애국가가 담긴 '한국환상곡'이 초연된 지 80년 만에 지난 9일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개막식에서 태극기가 게양되는 가운데 22개국 다문화가정 어린이들로 구성된 레인보우합창단의 선창에 맞춰 선수, 임원, 스태프, 관중 등이 모두 함께 불렀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태극기에 경례하며 따라 불렀고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도 기립한 채 예의를 표했다.

선수단 입장 순서에서 마지막에 등장한 남북한 선수단은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행진했다. 이튿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도 한반도기를 달고 첫 경기에 출전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국가 대신 '아리랑'이 연주됐다. 여자 아이스하키를 제외한 모든 종목의 남북한 선수들은 각각 태극기와 인공기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출전하며 시상식 등에서도 각각의 국가가 연주된다. 한국팀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쇼트트랙 남자 1천500m의 임효준이 11일 시상대에 올랐을 때도 태극기가 게양되는 가운데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남북한이 갈라져 이념 대결을 벌이는 가운데 지난 10여 년간 남쪽에서는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제창을 놓고 뜨거운 논쟁과 갈등을 벌여왔다. 더욱이 평창올림픽 개막 3주 전 북한팀 참가와 함께 남북한 동시 입장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소식이 발표되자 인공기와 한반도기 논란까지 가세해 국론 분열의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올림픽이 시작된 뒤 일부 오해가 풀리고 대다수 국민이 자제심을 보여 논란이 잦아들기는 했지만 논란과 갈등이 언제 재연될지 모르는 형편이다.

조국을 잃고 타국을 떠돌던 안익태는 애국가로 민족의 염원을 한데 모으고 '한국환상곡'으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렸다. 다양한 피부 빛깔을 지닌 다문화 어린이들은 올림픽 개막식에서 애국가를 들려주며 평화의 메시지를 인류에 전했다. 태극기와 애국가가 민족의 분열과 갈등의 대상이 아니라 자긍심과 화합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heey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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