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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5월 올림픽주경기장서 50주년 공연…추진위원회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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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5월 올림픽주경기장서 50주년 공연…추진위원회 출범
'세대 통합'한 국민 가수…추진위, 음악인생 조명할 다양한 사업 전개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20세기 최고의 가수'로 불리는 조용필(68)이 데뷔 50주년을 맞아 5월부터 기념 투어를 개최한다.
'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는 조용필이 5월 12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을 시작으로 상반기 대구, 광주, 의정부, 제주 등지를 도는 기념 투어를 확정했다고 2일 밝혔다.
지난달 발족한 추진위원회는 앞으로 공연을 필두로 조용필의 50주년을 조명하는 다채로운 사업을 전개한다.
추진위원회는 학계·공연·미디어·마케팅 등 조용필의 음악을 사랑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됐으며 반세기를 국민과 함께한 그의 음악인생을 조명하고 팬들과 자축하는 콘텐츠와 행사를 선보일 계획이다.
추진위 측은 "조용필 씨는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통합한 유일무이한 음악인이자 우리 시대의 자랑으로 그의 음악인생을 조명하는 것은 반세기 가요사와 시대상을 돌아보는 의미가 있다"며 "조용필 씨가 평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어서 각 분야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1968년 록그룹 애트킨즈로 데뷔한 조용필은 애트킨즈, 김트리오, 조용필과그림자 등의 밴드를 거쳐 솔로로 나섰다.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한 것을 시작으로 1980년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등이 수록된 1집으로 국내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우리 시대 스타 탄생의 서막을 알렸다.
컬러TV 시대가 도래한 1980년대 '오빠 부대'를 거느린 그는 2013년 세대를 초월한 명반인 19집 '헬로'(Hello)까지 총 19장의 정규 앨범을 내며 '국민 가수'의 표상이 됐다.
그는 세대와의 연결뿐 아니라 시대와도 교감했다. 신군부에 저항하는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암울했던 시기, 한을 토해내듯 부른 '창밖의 여자'로 위로를 안겼고,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서울 서울 서울'로 국민의 자긍심을 높였으며, 1987년 6월 민주 항쟁에 개탄하며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우리 우네'라는 '서울 1987년'을 노래했다. '서울 1987년'은 조용필이 작곡하고 그에게서 이 같은 심정을 들은 국내 첫 여성 영화제작자이자 홍상수 감독의 어머니인 고(故) 전옥숙 씨가 가사를 썼다.



그는 또 음악을 향한 고집으로 폭넓은 장르를 선보이는 실험을 했다는 점에서 평가받고 있다.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자신의 밴드 '위대한 탄생'을 결성해 록에 발을 딛고서 팝발라드('그 겨울의 찻집'), 포크('친구여'), 디스코('단발머리'), 펑크('못찾겠다 꾀꼬리'), 트로트('돌아와요 부산항에', '허공'), 민요('한오백년') 등을 아우르며 외연을 확장했다.
기존의 음악 문법을 깨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긴 내레이션을 삽입하거나, 19분 56초 길이의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을 부르는 파격적인 시도도 했다.
특히 팝록을 내세운 19집에서는 21세기 청춘과 교감하는 혁신적인 사운드로 음원차트와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세대 통합'이란 문화 현상을 만들어냈다. 음반 매장에는 그가 10년 만에 낸 앨범을 사기 위해 '긴 줄'이 이어졌고, 수록곡들이 각종 차트 10위권에 '줄 세우기'를 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그는 또 가요계의 물길을 여러 번 바꿔놓으며 수많은 후배의 길을 터주는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했다.
1980년대 팝이 시장 지분을 차지하던 시절, 다량의 히트곡을 내며 주류 음악계 선봉에서 '가요'의 위상을 드높였고, 그 시절 해외 시장에 눈을 떠 일본 NHK '홍백가합전'에 4회 연속 출연하며 한류의 물꼬를 텄다.
또 1991년 13집의 '꿈'을 끝으로 14집부터 콘서트로만 관객과 교감하며 방송에 종속됐던 가수들에게 '탈 방송' 시대를 열었으며, 지금까지 올림픽주경기장을 채우며 '공연형 가수'의 시작점이자 롤모델이 되고 있다. 그의 숱한 공연 중 2005년 8월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연 단독 콘서트는 널리 회자하기도 했다.
추진위 측은 "엄격한 자기 관리를 통해 LP와 CD, 디지털 음원 시대를 관통한 조용필 씨는 수많은 이들에게 '살아있는 전설', '가왕'(歌王)으로 불리지만 반세기를 돌아 이름 자체가 대명사가 된 유일무이한 현역"이라고 설명했다.
mimi@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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