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밥차 자원봉사자 "말동무 주치의 선생이 가시다니…"
세종병원 합동분향소 근처서 매일 봉사 "뭐라도 보탬 되는 일 하자 싶어"
(밀양=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고인과 연이 있는 사람이 어디 저 하나뿐이겠습니까. 밀양은 크지 않은 곳이라 한 다리만 건너도 다 아는 사이입니다. 이렇게 대규모 인명피해가 난 사고라면 지역민으로서 위로를 드리는 게 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밀양에서 살아온 민상일(74)씨는 세종병원 화재일 하루 뒤인 지난달 27일부터 매일 합동분향소 인근에 설치된 밥차를 찾아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세종병원 화재 참사 희생자 중 유일한 의사였던 민현식(59)씨와 여러모로 인연이 깊다.
그가 민현식 씨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때는 작년 4월이었다.
밀양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민상일 씨는 일하던 중 갈비뼈가 부러져 세종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때 그를 치료한 사람이 당시 그곳에서 근무 중이던 민현식 씨였다.
민상일 씨는 환자에게 친절하고 헌신적인 의사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그 이후로 그는 민현식 씨를 '자신의 주치의'라 생각하고 어디 아픈 곳이 있으면 항상 그를 찾아가 진료를 받았다.
특별히 아픈 곳이 없어도 병원을 찾아 차 한 잔 마시며 요즘 근황이나 안부 등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이 과정에서 민현식 씨가 자신의 먼 친척뻘이라는 사실도 알게 돼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친밀해졌다.
그러던 지난달 26일 그는 TV를 통해 세종병원에 불이 나 엄청난 사상자가 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내가 사는 곳에서 이런 일이 생겼는데 뭐라도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화재 다음날인 27일부터 합동분향소 인근에 설치된 밥차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민현식 씨가 숨졌다는 사실을 알게된 때도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난달 27일이었다.
자원봉사를 마친 뒤 합동분향소에 조문하러 간 그는 그곳에서 우연찮게 민현식 씨의 이름을 보게 됐다.
민상일 씨는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나 분향소 관계자에게 몇 차례 확인하고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며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에 빈소도 못 찾다가 발인 전 조용히 조문을 다녀왔다"고 안타까워했다.
심정적으로 힘들었으나 민상일 씨는 '밀양의 다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 입장일 것'이라는 생각에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한 명의 의사이자 인간으로서 착실하고 성실한 사람이 세상을 등지게 돼 너무 아깝다"며 "밀양에 이렇게 큰 불이 난 것은 처음인데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고 한숨 쉬었다.
그는 매일 오전이나 오후 합동분향소 인근 밥차에서 4∼5시간 동안 조문객이나 공무원, 유족 등에게 밥을 대접하고 있다.
화재 초기에는 하루 500여명이 밥차를 찾았으나 지금은 많이 줄어 200여명 정도가 이곳에서 식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상일 씨는 큰 재난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밀양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애도 분위기 속에서 유족분들이나 공무원들이 차분하게 사고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이 비극을 빨리 극복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며 "고인이 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위령제가 끝나는 날까지 계속 봉사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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