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무부 보고서 탓 '블랙리스트'가 된 포브스 부자순위
사실상 미 제재 예고여서 러시아 부호들 몸 사리기
"등재자 하룻밤새 1조원 손실"…'부실 짜깁기' 논란도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미국 재무부가 러시아 정치인, 기업인들의 부패의혹을 제기하며 발표한 보고서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자사의 부자 순위가 기피목록으로 돌변했다고 31일(현지시간)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푸틴 리스트'로 불리는 미 재무부 보고서는 포브스 자산 추산치를 포함해 공개된 자료를 취합하는 방식으로 작성됐다.
포브스는 자사 부자 순위 등재가 우쭐댈 권리를 떠나 독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푸틴 리스트가 현재는 명예훼손 수준에 머물고 있으나 앞으로 미국의 제재 근거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으면 출입국이 금지되고 자산이 동결되며 미국이나 유럽 은행들과 거래하는 데 추가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 같은 우려를 떠나 재무부 보고서 등재의 악영향이 하룻밤 사이에 바로 나타나기도 했다.
러시아 신문 RBK는 거명된 러시아 재계 인사들이 24시간 만에 10억600만 달러(약 1조800억원) 손실을 봤다고 보도했다.
석유회사 루코일의 사주인 바기트 알렉페로프는 2억2천600만 달러(약 2천420억원)를 잃어 가장 큰 자산 증발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포브스는 알렉페로프의 자산이 140억 달러(약 14조9천73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첼시의 구단주이자 90억 달러(약 9조6천255억원)를 지닌 부호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도 6천만 달러(약 642억원)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도됐다.
포브스 러시아판의 편집장인 니콜라이 마주린은 "포브스 목록이 자만 목록에서 유독성 목록으로 변형됐다"고 말했다.
마주린은 예전에 포브스와 인터뷰하기를 즐기던 러시아 부자들이 이제는 거리를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재무부 리스트에 포함된 이들 상당수가 러시아 정부와 유착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러시아 밖에서도 이번 보고서를 두고 썩 달갑지 않은 시선이 목격되고 있다.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푸틴 리스트가 부실한 면이 있다며 콧방귀를 뀌는 러시아 정치인들의 분위기를 소개했다.
러시아 전문가들도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체코 프라하에 있는 국제관계연구소의 마크 가엘로티는 트위터를 통해 "인턴 둘을 시켜 이틀이면 만들 수 있는 보고서"라고 혹평했다.
다른 러시아 전문가는 이에 대해 "이틀씩이나? 우리 인턴들이 구글을 돌려서 그 보고서를 만드는 데 한 시간 넘게 걸렸다면 자르고 다른 인턴들을 구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가디언은 미국 재무부가 정경유착 목록을 작성할 때 러시아 부자순위 수치를 인용하겠다고 포브스에 미리 통지했다고 보도했다.
푸틴 리스트는 작년 8월 제정된 '북한·러시아·이란 제재 패키지법'에서 푸틴 정권과 가까운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재벌)들을 공표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에 따라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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