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당 100년] ③ 극동시베리아고려인단체협회장 "유적 보존해야"
사할린동포 2세 백규성 씨 "독립운동가 얼 서린 곳이지만 자취가 거의 없다"
"표지판 만들고 영웅담 들려줄 것" "평창올림픽 계기 남북 화해기운 무르익길"
(하바롭스크<러시아>=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967년부터 반세기 넘게 하바롭스크에 산 저도 예전에는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이라는 한인사회당을 구체적으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1990년 당시 소련이 한국과 수교한 뒤 학자와 기자 등이 찾아와 물어보는 바람에 역사적 의의라든가 주요 인물 등의 이야기를 알게 됐죠."
지난 22일 러시아 하바롭스크의 극동시베리아고려인단체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백규성(67) 회장은 "하바롭스크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못지않게 독립운동가들의 얼이 서려 있는 곳인데 자취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면서 "시 당국과 협조해 사라져가는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표지판을 만들고 젊은이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영웅담을 들려주겠다"고 밝혔다.
"김알렉산드라 이름은 저도 예전부터 들었죠. 지금도 그의 집무실이 있던 건물에 표지판이 붙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나머지 인물에 관해서는 잘 몰라요. 그래도 자랑이 하나 있습니다. 시내 중심가에 김유천 거리가 있는데, 러시아에서 고려인 이름을 딴 거리는 이곳이 유일합니다. 원래 이름은 김유경인데 1929년 소련이 철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분쟁을 벌일 때 소련군 중위로 참전해 전공을 세운 인물이죠."
하바롭스크주에는 145개 민족이 산다. 고려인은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나나이인에 이어 4번째로 많다. 2017년 우리나라 외교부 통계에 따르면 하바롭스크 전체 재외동포 8천107명 가운데 92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고려인이다.
"고려인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근면해 주정부와 시정부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선조들도 자랑스럽지만 우리 후손들도 공무원, 주의회 의원, 대학교수, 의사, 기업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인으로 활약하고 있죠."
극동시베리아고려인단체협회에는 이산가족협회, 노인회, 청년회 등이 소속돼 있다. 언어와 문화 등 전통을 보존해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과 다른 민족들과 교류 친선을 도모하는 게 주요 업무라고 한다. 설과 추석 등 명절에는 합동잔치를 열어 전통음식을 나눠 먹고 전통놀이를 즐긴다.
가장 큰 행사는 2차대전 종전 겸 광복절을 기념해 한국 국제휴먼클럽(총재 백은기)과 함께 꾸미는 고려인문화대축제다. 지난해에는 한국 기업 아시아나항공·오리온·계룡건설, 고려인 기업 엔카·미르 포쑤뒤 등의 후원으로 8월 12∼13일 기념식과 함께 사물놀이·국악·전통무용·가곡·가요 등의 향연과 체육대회·한복경연대회·한국전통음식경연대회·노래자랑 등을 펼쳤다.
"광복절 행사나 명절 때는 고려인은 물론 한인회, 주정부, 시정부, 고려인 기업, 한국 기업, 북한 영사관 출장소, 한국교육원 등의 관계자를 모두 초청합니다. 우리 단체나 축제 심벌에 러시아 국기는 있어도 태극기와 인공기는 없습니다. 한반도 지도에 독도는 확실히 표시했죠. 이곳에서라도 남북한 사람들이 터놓고 어울렸으면 좋겠습니다."
건설사와 여행사 등을 경영하는 백 회장은 2004년부터 극동시베리아고려인단체협회를 이끌고 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극동협의회장을 지낸 이력도 있어 평창동계올림픽 단일팀 소식을 누구보다 기뻐하고 있다.
"IOC의 결정으로 이번 동계올림픽에서는 러시아 국기를 볼 수 없게 돼 아쉬웠는데, 한반도기가 등장한다니 더없이 반갑고 흐뭇합니다. 메달을 따고 안 따고는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한다는 게 중요하죠. 한 핏줄에 같은 언어를 쓰는 민족이 갈라져 싸운다는 게 기막힌 현실 아닙니까. 남한, 북한, 재외동포 누구에게 물어봐도 다 통일을 원한다고 하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남북 화해의 기운이 무르익기를 기대합니다."
백 회장은 사할린 동포 2세다. 일제에 의해 징용된 사할린 동포들은 1945년 해방을 맞은 뒤에도 발이 묶여 소련과 북한 국적 중 하나를 고르라는 선택에 내몰렸다. 경상도와 전라도 출신이 대부분이던 이들은 고향에 돌아갈 기대를 버리지 않고 오랫동안 무국적으로 버티다가 취업과 자녀 교육 때문에 거의 소련 국적을 택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께서 현명하셨죠. 고향이 경상도인데도 일찌감치 소련 국적을 택했으니까요. 그 덕에 저는 중학교를 마치고 본토로 나갈 수 있었고 하바롭스크의 철도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부친은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사업에 동참해 1990년 한국으로 이주, 경기도 안산에 살고 있다고 한다. 어머니는 10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는 "늦게나마 일본이 한국과 협정을 맺어 사할린 동포들이 고향에서 살 수 있도록 해준 것은 다행스럽지만 영주귀국 대상을 광복 이전 출생자에게만 한정해 새로운 이산가족을 만들어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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