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관심-리더십 삼위일체…우연 아닌 베트남의 '박항서 매직'
약 10년간 투자로 성장 발판…국제무대서 연이은 결실
(서울=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 세계적으로는 물론 아시아 내에서도 '축구 변방'에 가까웠던 베트남이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을 계기로 단숨에 아시아 축구의 중심에 설 기세다.
부임 3개월 만에 팀을 대회 결승으로 이끈 박항서(59) 감독의 리더십이 부각되는 가운데 장기간 이어진 적극적인 투자와 국민적인 관심도 재조명받고 있다.
베트남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206개 국가 중 112위에 불과하다. AFC 내에서도 상위권과는 거리가 멀다.
'실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열기만큼은 뜨거운 국가'로 여겨진 베트남이 이제 아시아 맹주들을 상대로 명함을 내밀 정도의 기량을 갖추게 된 데는 10년가량 계속된 활발한 투자가 뒷받침됐다.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빈그룹의 투자로 2008년 탄생한 유소년축구기금(PVF)은 유망주 성장의 젖줄이 됐다.
연령별 팀에서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선수들은 14세부터는 테스트를 거쳐 프로로 진출할 준비를 한다. 19세 이전까지의 유망주들이 경쟁을 통해 기량을 닦는다.
PVF는 2014년부터 K리그2의 부산 아이파크와 협약을 맺어 훈련과 친선경기를 함께하는 등 해외 교류 활동도 이어왔다.
프로팀인 호앙 안 지아 라이(HAGL)의 아카데미도 투자의 대표적인 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과 협력해 만든 이곳에서도 유럽식 시스템 속에 미래 자원들이 자랐다.
두 축을 바탕으로 달라진 축구 환경 속에 자란 인재들은 최근 국제무대에서 직접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베트남은 2016년 10월 AFC U-19 챔피언십에서 4강에 진입해 지난해 FIFA U-20 월드컵 본선에 올랐다. FIFA 주관 대회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당시 조별리그에서 최하위로 탈락했지만, 베트남은 뉴질랜드를 상대로 승점 1을 따내며 의미 있는 결과를 남겼다.
이때 주축이 된 선수 상당수가 PVF 출신이었다.
이어 현재 진행 중인 AFC U-23 챔피언십에서는 첫 결승까지 오르며 축구 열기에 더욱 불을 붙였다.
'베트남 출신 K리거 1호'이자 '베트남의 박지성'으로 불리는 이번 대표팀의 주장 르엉 쑤언 쯔엉 등이 HAGL 아카데미를 거쳤다.
이렇게 쌓인 잠재력을 폭발한 것은 감독들의 리더십이었다.
U-20 월드컵에 나선 대표팀은 2015년부터 호앙 안 투안 감독 체제에서 대회를 준비했다. 패스와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를 꾸준히 다듬으면서 첫 FIFA 주관 대회 본선 진출을 일궜다.
지난해 10월 U-23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박항서 감독은 재임 기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베트남의 주력이던 포백 대신 스리백으로의 포메이션 변화를 통해 팀의 장점을 극대화하려 했다.
국내 프로나 실업팀에서 주로 활동하던 박 감독의 부임과 함께 일어난 갑작스러운 변화에 처음엔 미심쩍어하던 베트남의 여론은 실전의 성과로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이번 대회에서 베트남은 조별리그부터 한국, 호주 등 아시아의 강국으로 꼽히는 팀들과 경쟁해 조 2위로 통과하며 돌풍을 예고했다.
한국에는 1-2로 졌지만, 막판까지 대등한 승부를 펼쳤고, 호주와의 2차전에서는 역습을 앞세워 승리를 거뒀다. 8강과 준결승에서 이라크와 카타르를 꺾을 때도 탄탄한 조직력과 집중력이 돋보였다.
특히 토너먼트에서는 두 경기 모두 연장전을 거쳐 승부차기까지 가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도 발휘하며 승리에 목마른 베트남 국민의 열렬한 응원을 등에 업었다.
장기적인 투자 속에 기본기를 착실히 만든 선수들이 투혼을 불사르도록 팀을 이끈 박 감독의 지도력은 '박항서 매직'으로 불리며 칭송받고 있다.
27일 오후 중국 창저우 올림픽센터에서 열리는 우즈베키스탄의 대회 결승전에서 '박항서 매직'이 완성될지 베트남은 물론 아시아 축구 팬들의 관심이 쏠린다.
song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