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行 좌절' 노선영 "손 놓아버린 빙상연맹 원망스러워"
"스케이트 그만두라는 얘기…앞으로 뭘 할지 모르겠다"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내일부터 당장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스피드스케이팅 노선영(29·콜핑팀)의 목소리는 공허했다.
4년간 준비한 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들은 지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히 멍하다고 했다.
선수촌 퇴촌 통보를 받은 노선영이 짐을 싸들고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온 24일은 공교롭게도 서울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단을 비롯한 올림픽 출전 선수들이 결단식을 가진 날이었다.
이날 결단식은 지상파 3사에서 모두 생중계됐지만, 노선영은 TV를 틀지 않았다.
그는 "그럴 시간도, 정신도 없었지만 보고 싶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얼마 남지 않은 평창올림픽을 위해 강릉선수촌에서 땀을 흘리던 노선영이 자신에게 올림픽 출전권이 없다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것은 지난 23일이었다.
노선영은 김보름(강원도청), 박지우(한국체대)와 함께 팀 추월 종목에 출전할 예정이었는데 개인종목 출전 자격이 있는 선수들만 팀 추월에 출전할 수 있다는 규정을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뒤늦게야 알게 됐다.
이미 며칠 전 동계체전 기간에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으로부터 올림픽에 못 나갈 수도 있다는 귀띔을 받기는 했으나 설마설마했던 노선영은 전날에야 관계자들에게 재차 물어 확답을 받게 됐다.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못 나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믿기지도 않고 실감도 안 나더라고요. 억울하죠. 억울한 것밖에 없어요.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요.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었어요."
빙상연맹이 규정을 몰라 자격 없는 선수에게 올림픽을 준비시킨 것이 아니라, 규정을 몰랐던 탓에 자격을 얻을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주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팀 추월 출전을 위해 개인종목 출전자격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1∼4차 월드컵에서 팀 추월만이 아닌 개인종목에도 좀 더 신경을 쓸 수 있었다.
이전 세 번의 올림픽에서 개인종목에 출전했던 노선영이었고, 이번에도 1,500m 예비 2순위였으니 조금만 더 신경 썼어도 가능했다.
그러나 훈련도, 실전도 모두 팀 추월에 무게가 실렸다.
"팀 추월은 3명 모두 잘 타야 하는 종목이라 제가 잘못해서 팀에 폐를 주는 것은 싫었어요. 가능하면 팀에 도움이 되고 싶었죠. 위에서나 지도자들도 매스스타트와 팀 추월이 메달 가능성이 있으니 모든 훈련 프로그램을 거기에 맞췄어요."
월드컵이 끝나고 노선영이 직접 자신이 팀 추월에 나갈 수 있는 것이냐고 지도자들에게 묻기도 했는데 개최국 쿼터가 있으니 가능하다는 답만 들었다.
노선영은 빙상연맹의 행정 착오도 행정 착오지만, 이후의 조치가 더욱 화가 난다고 했다.
"빙상연맹은 ISU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있어요. 정말 ISU에서 잘못한 것이면 뭐라도 조치를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손을 놓아버렸어요. 메일 몇 개만 보내면 끝인가요. 그냥 덮으려고만 하는 것 같아요. 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싶은데 연맹은 아무 노력도 안 한 채 벌써 저 대신 들어갈 팀 추월 선수만 생각하더라고요."
운동선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에 평창올림픽만 바라보며 스케이트 끈을 묶었던 노선영은 목표가 사라지자 길을 잃은 기분이 됐다. 운동도 하고 싶지 않고, 당장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만하라는 거죠. 내년부터 만 27세 이상이면 대표팀 훈련에도 못 나간다니 기회도 없고요. 팀과의 계약이 1년 남긴 했지만 더이상 국가대표로 국제대회 나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까지 노력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이런 대접밖에 없으니까요."
노선영은 이번 시즌 월드컵 대표 선발전에서 여자 1,500m 우승을 차지한 후 지난 2016년 세상을 떠난 동생 노진규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쇼트트랙 국가대표였던 노진규는 갑자기 찾아온 병마에 올림픽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동생은 올림픽에 도전도 하지 못했는데 전 도전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간절히 바랐어요. 동생을 생각하면서 마지막 올림픽을 후회 없이 끝내고 싶어서 4년을 준비했죠. 정말 제 생각과는 너무 다르게, 어처구니없게 운동생활이 끝나는 것 같네요."
그렇게 기다리던 평창올림픽은 예정대로 열리지만, 노선영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 보면 기분만 이상해질 것 같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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