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오성운동 창립자 그릴로, 2선 완전 후퇴?
새 블로그 개설…"총선 앞둔 오성운동, 과격 이미지 벗기 전략의 일환"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사상 첫 집권을 노리는 이탈리아 제1야당 오성운동의 실권자로 여겨져온 베페 그릴로(69)가 새로운 블로그를 개설, 오성운동과 공식적으로 거리두기에 나섰다.
그릴로는 23일(현지시간) 오성운동과는 전혀 무관한 새로운 블로그를 열고 활동을 개시했다.
풍자에 능한 코미디언 출신의 그릴로는 부패한 기성 정치권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 운동을 펼치겠다고 천명하며 2009년 컴퓨터 공학자인 고(故) 잔로베르토 카살레조와 손잡고 오성운동을 공동 창립한 이래 현재까지 오성운동의 방향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결정권자 역할을 해왔다.
그는 작년 9월 오성운동 당 대회에서 당 대표직을 루이지 디 마이오(31) 하원 부의장에게 물려주며, 2선으로 후퇴했으나, 이탈리아 정치권은 여전히 그릴로가 디 마이오를 막후에서 조종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릴로가 오성운동의 정책을 홍보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역할을 해온 자신의 블로그에서 오성운동의 흔적을 완전히 지운 것은 오성운동과 자신과의 관계에 공식적으로 선을 그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불 같은 성미와 과격한 언변으로 유권자들의 분노를 자극해온 그릴로가 오성운동의 실권자로 비춰질 경우 집권을 위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릴로는 이날 "우리에겐 미래가 있고, 나는 뒤로 물러나 이를 지켜보길 원한다"고 말하며 당에서 정식으로 손을 뗄 것임을 천명했다.
그동안 오성운동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해온 그릴로의 블로그가 새 출발을 함에 따라 오성운동은 'www.ilblogdellestelle.it'를 주소로 하는 새로운 공식 사이트를 창설했다.
디 마이오 대표는 "그릴로가 오성운동을 시작했지만, 오성운동은 이제 스스로의 두 발로 전진하면서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존 좌파와 우파로 대표되는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하는 전략으로 부패한 기성 정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을 빠르게 공략한 오성운동은 2013년 총선에서 단숨에 제1야당이 되는 기염을 토했고, 2016년 6월 시행된 지방선거에서는 수도 로마 시장과 이탈리아 제4의 도시인 토리노 시장까지 배출하며 기세를 올렸다.
오성운동은 현재 단일 정당 가운데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으나 집권을 위해서는 지지층 확장이 절실하다고 보고, 총선을 앞두고 그동안의 과격한 이미지를 벗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당 대표로 시장과 유럽연합에 좀 더 온건한 디 마이오 하원 부의장을 내세우고, 최근 공개한 국정 운영 프로그램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오랜 방침을 삭제해 유권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려 한 것은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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