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 제공 혐의 전 CIA 요원, 담배회사 보안책임자로 일해
위조담배·밀수 등 적발 업무 맡아…SCMP "중국에 정보 흘린 정황"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 정보원의 신원 정보를 중국 정부에 넘긴 혐의로 체포된 전직 CIA 요원이 다국적 담배회사와 경매회사에서 보안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53세 귀화 미국 시민인 제리 춘 싱 리는 지난 15일 뉴욕 존 F. 케네디(JFK) 국제공항에서 국방 기밀정보 불법 보유 혐의로 체포돼 기소됐다.
미국에서 자란 리는 미군에서 복무한 뒤 1994∼2007년 CIA에서 근무하면서 요원 조직 관리를 맡았다. 미국 관리들은 중국 정부가 중국 내 미국 정보원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을 돕는데 그가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리는 2007년 CIA에서 나온 후 같은 해 재팬타바코인터내셔널(JTI) 홍콩법인의 '글로벌 브랜드 검증 팀'에 입사했다. 이 팀은 담배 밀수와 가짜 담배 유통을 적발하는 임무를 맡았다.
JT의 국제사업 부문인 JTI는 1999년 미국 R.J.레이놀즈의 해외 담배 사업부문을 인수해 설립됐으며,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다.
리는 1988∼2002년 CIA에서 일하고, 2004년부터 JTI 글로벌 브랜드 검증 팀의 부사장으로 재직한 데이비드 레이놀즈의 부하 직원으로서 일했다.
하지만 리가 이곳에서 근무할 당시에도 상당히 수상쩍은 정황이 포착됐다고 JTI 전직 임원은 밝혔다.
이 전직 임원은 "우리는 서방국가의 법 집행기관 등과 협력해 범죄조직이나 북한 등이 밀수하거나 위조하는 담배 유통을 추적하고 있었다"며 "하지만 리가 이러한 정보를 중국 측에 흘리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를 위해 우리가 구매한 위조담배를 선적한 여러 척의 선박이 중국 당국에 의해 적발되거나 사라졌으며, 한 담당 직원은 체포돼 투옥되기도 했다"며 그 배후에 리가 있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리는 2009년까지 JTI에서 일하다 상사와의 불화 등으로 JTI를 떠났으며, 이후 비슷한 일을 하는 회사를 직접 설립하기도 했으나 오래 운영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리는 다국적 경매회사 크리스티에 들어가 최근 2년 동안 이 회사 홍콩법인의 경비 책임자로 일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 경매에서 4억5천30만 달러(약 5천억원)에 낙찰돼 경매 사상 최고가로 화제를 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살바토르 문디'(구세주)가 홍콩에서 전시될 때 그가 경비를 책임졌다는 얘기도 있다.
크리스티에서 그가 맡았던 직책의 연봉은 통상 3만 홍콩달러(약 4천100만원)에서 6만 홍콩달러(약 8천200만원) 사이이다.
한 소식통은 "경비 책임자들은 매우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리는 그렇지 않았다"며 그가 부드럽고 신중한 성격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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